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좀머 씨 이야기>

스무살의 새벽 무렵이면...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전해준 이야기에 잠 못 든 적이 참 많았다. 한 구절의 문장을 읽을 적마다 전해오는 (그만의) 문체의 마력을 통해 우리는 독특한 향기를 담고 살아가는 그이들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 역시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좀머 씨의 이야기를 소년의 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좀머 씨의 마지막 말은 나의 마음을 스미듯 스쳐지나 갔다. 그의 애원석인 목소리가 가슴을 울렸고, 머리를 강타한 기분이었다.

‘왜 세상을 향해 그는 도망치듯 쉼 없이 걸어야만 하는 것일까?’
‘왜 그는 잠시의 휴식조차 신음석인 울음을 들려주어야만 했을까?’

좀머 씨의 특이한 삶의 모습을 추측해 보는 것은 쉽다. 보통 사람들처럼 마음 닿는 대로 생각 하면 된다. 하지만 좀머 씨가 걸어야만 하는 이유를... 좀머 씨가 그렇게 힘겨워 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아무도 알 수는 없다. 나 역시 그의 삶을 소년의 눈을 통해 들여다봄으로써 잠시 느끼고 생각해 볼 뿐이다. 하지만 좀머 씨를 만남에 있어 그의 애잔한 슬픔에 대해서만큼은 진실로써 느끼고 싶었다.

우선 그는 자유를 갈망하는 소년을 살렸다. 소년은 좋아하던 여자 아이에게 바람맞고, 피아노 선생님에게 오해를 사고, 가족들은 자신을 몰라주었기 때문에 30m의 고목나무 위에서 죽음이라는 의미를 통해 자유를 되찾고자 자살하려 했다. 하지만 좀머 씨가 나무아래에서 조심스레 행동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절망이 만들어 내는 애절한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지팡이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부족한 행동에 대한 후회와 삶의 희망에 대한 불씨를 타 올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좀머 씨의 기이한 행동들이 일상적인 풍경으로 다가올 쯤, 그는 10월의 호수를 향해 몸을 맡겼다. 소년은 좀머 씨의 모습을 보고 당혹스러워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그렇게 아저씨의 모습이 사라지고 밀짚모자만이 동그마니 물위에 떠올라서야 소년은 좀머 씨의 죽음을 느꼈다. 소년은 아저씨의 죽음 앞에 다가온 무성한 소문 사이, 모든 사실을 함구해 버렸다.

‘소년은 왜 좀머 씨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의 마지막까지 전해오는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란 말에 대한 좀머 씨와 소년 사이의 약속이 아니었을까... 좀머 씨의 세상을 향한 처음이자 마지막 간청에 대해 소년만이 약속을 지킨 것이 아닐까...

좀머 씨를 평가함에 있어 어떤 이는 세상이 전하는 치열함을 담지 못한 낙오자라 말할지 모른다. 혹은 그를 평가함에 세상을 향해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유를 찾고자한 진정한 순결자라 말할지 모른다. 좀머 씨의 삶에 대해 감히 무어라 말할 순 없다. 다만 그가 부족한 스물 하나의 내게 전해준 무언(無言)의 삶에 대한 도전을 담으라는 말. 그것이 세상을 향한 도전이냐... 자신의 본질에 대한 도전이냐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좀머 씨는 분명 우리에게 순수함을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 귀결점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나타났지만, 우리는 그가 살고자 한 욕망. 갈망하고 쫓았던 그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좀머 씨와 우리의 약속이며... 좀머 씨가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한 마지막 이야기. - 절망과 고통이 나의 생애를 엄습해 올지라도 세상과 나를 향한 삶의 대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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