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1923 관동대학살 - 생존자의 증언
정종배 지음 / 창조문예사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종배 시인의 최고 역작!!!! 기대가 큽니다. 선구매 선후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로드 1 - 선사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한국사로드 1
김종훈 지음 / 텍스트CUBE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덕이라면 한국사로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로드 1 - 선사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한국사로드 1
김종훈 지음 / 텍스트CUBE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생에 한 번은 역덕이 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네이버 카페로 월급 대신 월세 받는다
김소영 지음 / 라디오북(Radio book) / 2022년 2월
평점 :
절판


드디어 누나의 새책을 받았습니다. <나는 네이버카페로 월급 대신 월세 받는다>라는 제목의 책.

언젠가 말씀드렸듯 저와는 완연히 다른 누나입니다. 동생으로서 평가하면 상당히 명민하고, 감각이 뛰어납니다. 특히 자신만의 방법을 구축해서 가만히 있어도 돈을 버는 촉이 대단합니다. 그러니 이런 책도 나오고, 텀블벅 펀딩에서 1258%의 성공률을 이룬 것이겠지요.

책 내용은 제목과 같습니다. 모두가 유튜브와 인스타에 집중할 때 1세대인 네이버카페를 해야 한다는 것. 누나가 실제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방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제가 초고부터 완성본까지 쭉 살폈는데. 진득하니 앉아 하나하나 따라하면서 진행하면 결국 빛을 볼 것 같더라고요. 다만 자신만의 콘텐츠가 확실히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초고에서는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바로 에필로그. 제목이 “당신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더군요. 솔직히 소름 돋았습니다. 늦봄 혹은 초여름께 출간되는 제 새책 <한국사로드> 프롤로그 제목이 “우리네 삶이 좀 더 풍요로워졌으면 합니다”라고 적었거든요. 저는 정말로 제 책을 통해 삶이 풍요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기에. 그런데 누나 책 보니 에필로그에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면 좋겠다”라고 적혀있더라고요. 누나나 저나 정말 같은 마음으로 썼구나 싶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누나가 말하더라고요. “책은 네이버카페로 돈 버는 방법을 담았지만 이 책에서 사람들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동생 여하를 떠나 마흔 줄에 접어든 한 사람이 보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제게 두 권이 있습니다. 꼭 필요한 분한테는 만나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누나의 세 번째 책 많이 응원해주시고요. 단독 출간은 처음이라 엄청 설레어 하더라고요. 제 책도 나오면 더 응원해주세요. 엄청 기대하셔도 좋아요. 고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 친일파 김백일부터 광복군까지
김종훈 지음 / 이케이북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함께 임정로드를 걸었던 군산 사는 조종안 기자님이 써 준 서평이다.

가슴 뜨거운 글이다.


http://omn.kr/1os76


++++


친일파와 애국지사 묘가 한자리에... 참 괴이한 명당


[서평]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 지음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20.09.06 19:41l최종 업데이트 20.09.06 20:13l조종안(chongani)


국내외 각지에서 독립투쟁을 전개한 애국선열들은 자유, 평등,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꿈꾸었다. 따라서 광복 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제에 부역했거나 침략전쟁에 앞장서 참여했던 민족 배신자 청산이었다. 그에 따라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고 특별 검찰부와 특별재판부까지 설치됐으나 이승만의 반민특위 해산으로 친일 잔재 청산은 좌절된다. 


친일잔재 청산을 실패한 후유증은 정치, 경제, 사회, 언론, 예술,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났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동작동 국립묘지'로 불렸던 국립서울현충원이다. 아래는 서울·대전 두 현충원에 잠든 친일파들 흔적을 추적한 가이드북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아래 <현충원 한 바퀴>)에 실린 '국립서울현충원의 역사' 한 대목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사망한 국군장병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줄임) 1957년 4월부터 신분이 확인된 군인들을 중심으로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국립묘지로 불리던 현충원이 국립현충원으로 개편된 건 1996년 6월의 일이다. 현충원에 국립묘지가 조성되고 만 40년이 지나서의 일인데, 그사이 현충원에는 신분을 바꾼 친일파들이 국가의 영웅으로 포장돼 잠들었다."


<현충원 한 바퀴> 저자인 김종훈 기자는 "특히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2묘역에 잠든 신태영과 이응준의 묘소 위치가 문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 묘역과 애국지사 묘역 머리맡에 있다"라며 "지사들의 묘소를 바라보고 참배를 하면 어쩔 수 없이 국가공인 친일파들에게도 인사를 드리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다"라고 덧붙인다.


그중 이응준은 일본 육사 동기인 지청천(훗날 광복군 총사령)이 일본 국적을 버리고 중국으로 탈출한 것과 달리 일본군 장교로 남아 일제에 충성한다. 그는 조선인으로서는 드물게 대좌(대령) 계급까지 승진한다. 이응준은 초임 장교 시절부터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두 차례 훈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가공인 친일파 백선엽의 생전 회고(1989년 4월 27일 치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립서울현충원은 1954년경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고른 명당이라 한다. 풍수지리에 해박했던 이승만은 헬기를 타고 이곳저곳 산세를 정찰하다가 동작동 언덕을 가리키며 국군묘지를 만들도록 지시했다는 것. 그러면서 '나도 장차 여기에 묻히고 싶네'라고 말했단다.


▲  친일파 묘역에 대해 설명하는 김종훈 기자

ⓒ 조종안 


서울과 대전에 각각 자리한 국립현충원에는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와 독립선열들이 함께 잠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괴이한 현상은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에도 나타난다. 2009년 11월 기준,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국가공인 친일파와 비공인 친일파 35명, 국립대전현충원에는 국가 공인 친일파와 비공인 친일파 34명이 잠들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현충원 한 바퀴>는 표지에서 저자의 의도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눈에 익은 인물 여섯 명이 보이는데 셋(백선엽, 박정희, 김백일)은 골수 친일파들이고, 나머지 셋(김익상, 김창숙, 조명하)은 항일애국지사이기 때문. 특히 녹색 줄무늬는 현충원을 병풍처럼 감싼 산자락이 오버랩되면서 항일과 친일이 공존하는 국립서울현충원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국립서울현충원 친일파 묘역 위치(총 35명)를 안내하며 "2009년 반민규명위가 발표한 1000여 명의 '국가공인 친일파'에 들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비공인 친일파'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이라며 "그중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박정희, 정일권, 안익태, 채병덕, 임충식을 선정해 더 자세히 살폈다"라고 밝힌다.


놀라움과 혼란, 비애감 느껴졌던 국립서울현충원


필자는 2019년 ​7월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와 함께하는 '서울 임정로드 탐방: 현충원에 잠든 친일파와 애국지사를 찾아서' 행사에 참석했다. 그날 장군1묘역→ 이승만대통령묘역 → 박정희대통령묘역→ 장군2묘역→ 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 임시정부요인묘역→ 무후선열제단→ 애국지사묘역 등을 돌아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고자 조성된 성지에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가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는 간도특설대 장교였던 김백일,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으로 일본군 장교가 된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 등 수십 명의 골수 친일파 묘역을 대하며 비애감이 들었다.


박정희 묘역은 용과 호랑이가 좌우에서 뻗은 '좌청룡 우백호' 형세로 명당 중 명당으로 알려진다. 많은 사람이 명당을 찾는 이유는 후손들이 하는 일마다 순조롭게 잘되고 명성을 날리는 삶을 영위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 기운은 몇 대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박 대통령 자손들(근혜, 근령, 지만)의 행적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애국지사 및 임시정부 요인, 무후순국선열 모두를 추모하는 충열대 머리글 '민족의 얼'은 박정희 대통령 친필이라는 김종훈 기자 설명은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사람에 따라 '민족의 얼' 개념이 바뀌지는 않을 터. 조국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를 향해 '멸사봉공·견마지로'를 외쳤던 만주군 출신 박정희가 직접 썼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의 아이러니이기 때문이었다.


일본 군인으로 무려 30년 넘게 복무하였고, 대중 앞에서 '나는 죽어서 야스쿠니 신사에 잠들고 싶다'고 말했다는 용산정차장 사령관 출신 신태영(1891~1959). 그의 비문에는 '개화의 선구자로 호국의 간성(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시었고, 강직과 청렴으로 시대의 등불이시었으며, 덕과 지용으로 국군을 세워 기르셨다'라고 새겨져 있어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일과 친일이 공존하는 '괴이한 명당'


'잘못된 역사의 매듭은 오랜 시간 상처를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일제의 식민통치와 민족 반역자들에 의해 굴절되고 왜곡된 우리의 근현대사, 그 생채기로 얼룩진 현실을 서울과 대전에 조성된 국립현충원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7월, 백수를 누리고 사망, 논란 끝에 결국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국가 공인 친일파 백선엽의 예에서도 진하게 느껴진다.


국립서울현충원은 대통령 이하 주요 인사들이 국경일이나 선거를 마친 뒤 참배하는 호국 보훈의 성지다. 그런데도 요지마다 친일파가 잠들어 있다. 그중에는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규정한 국가공인 친일파도 일곱 명이나(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김홍준, 백낙준 등) 포함되어 '괴이한 명당'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충원 한 바퀴>에 따르면 대전 현충원도 국가 공인 친일파가 여럿(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홍석 등) 있어 서울 현충원과 다를 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애국지사 참배조차 부담 느껴지는 오늘날의 국립 현충원, 이 괴이한 명당들을 '정상적인 명당'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국민의 끊임없는 관심과 참여가 선행돼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친일파와 애국지사 묘가 한자리에... 참 괴이한 명당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9-07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