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
김성동 지음 / 깊은강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봄의 햇살이 다가오는 도서관 구석진 자리, 조심스레 잠들어있던 <만다라>를 손에 집었다. 내 나이만큼이나 손때 짙게 배인 깨알 같은 글씨 너머로 강인한 생명력이 다가옴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 전율의 파장을 이어가기 위한 만다라의 길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아쉬운 미소를 던져야만 했다.

‘왜 법운은 피안(彼岸)으로 가는 차표를 찢어야만 했을까,..’
‘고통과 번뇌만이 존재하는 세속의 시간으로 다시금 달려가야만 했을까...’

사회의 ‘틀’속에 익숙해져버린 나의 사고는 그의 파계승적인 행동에 안타까움 가득한 여운만을 담아 볼 뿐이다.

법운과 지산이 만나기 전, 그들은 분명 부처에로의 귀의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나름의 구도적인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한 방법상의 차이로 인해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달랐다. 하지만 도덕적 가치의 잣대를 벗어던지고 법운과 지산을 바라본다면, 내면에 잠들어 있는 ‘병 속의 새’를 꺼내려 한 법운과 극단적인 타락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에 존재하는 부처에 가장 가까운 순수성을 지닌 체 다가 설수 있다고 본 지산은 분명 수단으로서의 차이만 존재할 뿐, 목표의 동질성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산은 분명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부딪히고 있었다. 사회의 ‘틀’은 구도자에게 가시적인 참선과 수행만을 강요했다. 그러했기에 그이들의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진 이야기는 철저하게 숨겨질 수 있었다. 지산은 사회의 부조리함에 화가 난 것이고, 순수성을 상실해 버린 구도자의 모습에 분노 한 것이다. 그러했기에 사회의 규정된 시각(틀)에 반하는 파계승적인 행동을 취한 것이다.

나아가 법운은 지산을 동경했기에 그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법운 역시 부조리한 사회의 ‘틀’에 대한 강한 도전으로써 술과 담배 그리고 여자를 탐닉하는 파계승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다. 결국, 법운은 지산의 죽음과 그를 견성함으로써 ‘병속의 새’를 느낄 수 있었고, 그를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에 감추었던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었으며, 자기 자신의 본질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늙은 매춘부와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번뇌와 고독은 하나의 가치 있는 대상물로써 삶의 밑바닥부터 존재한다. 지산에게는 철저하게 절망과 고뇌, 허무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했기에 지산에게는 아픔과 고독이 하나의 구도이며 열반을 향한 길인 것이다. 존재하는 고뇌에 대한 또 다른 참선과 고뇌는 불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지산이 궁극적인 삶의 본질을 찾고자 보인 파계승적인 행위는 분명 사회의 ‘틀’이라는 가치뿐만 아니라 부처 역시 허락지 않은 산물이다. 독선과 타락의 시각을 벗고 마음을 비울 때 부처가 조심스레 그 마음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했기에 우연히 주말 대형 서점을 통해 접하게 된 신(新)개정판에서의 ‘만다라’는 법운을 세속에 귀화시키지 않고, 피안(彼岸)으로 길을 떠나게 한 것 아닐까... 지산의 독설적인 사회에 대한 질타를 줄임으로써, 구도자의 모습을 좀더 본질적으로 살펴본 것이 아닐까...

가방 구석진 곳 오래된 ‘만다라’를 넣고, 겨우내 잠들어 있던 북한산 노적사를 지난 주 찾아갔다. 소시 적부터 어머니 손 고이잡고 다녔던 길임에도 사찰을 오를 적 느끼는 마음은, 이 길을 처음 걸었던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봄의 향기 가득한 사찰길이 변하지 않듯이……. 스물 하나의 이야기를 사랑하고, 치열함 가득한 청춘을 아끼다 보면 우리도 구도자로서의 본질적인 모습에 다가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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