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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풍경
마르틴 바른케 지음, 노성두 옮김 / 일빛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지금으로부터 무려 15년 전인 1999년에 구입하고는 여태까지 읽지 않고 책꽂이에 꽂아 두었던 어떤 책을 마침내 읽은 때가 2014년 6월 13일 금요일 이었다. 13일의 금요일! 책 제목은 『정치적 풍경』이고 저자는 독일의 미술사학자인 미하일 바른케이며 번역자는 노성두 그리고 출판사는 <일빛>이고 가격은 7800원이다. 당시 영풍문고에서 1999년 2월 27일 토요일에 구입한 것으로 내 서명과 함께 표기되어 있다. 당시 어떤 생각에서 이 책을 구매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읽겠지 생각하고는 지난 세월이 무려 15년! 그동안 미술에 관한 책들을 꾸준히 읽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비로소 다 읽고 나니 진작 읽었더라면 풍경화의 헤석에 큰 도움을 받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풍경화에 감추어진 정치적 의도를 드러낸다’는 부제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서양회화 중 특히 풍경화를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준다. 간단히 말해 자연속 어떤 풍경을 그린 풍경화가 단순히 그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애초부터 정치적 의도를 담고자 권력자의 의지가 개입되어 권력자에 굴복한 풍경이고 그것으로 신민의 존경과 정치적 권력의 영속성을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연을 오직 정복과 개조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서양에서 정치적 의미를 노골적으로 담고 군주의 덕과 통치력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역설하는 많은 풍경화 뿐 아니라 건축물, 거상 조각 또는 주화나 메달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대통령 선거를 전후하여 쏟아져 나오는 후보자들의 자서전이나 전기 역시 똑같은 의도가 개입된 기획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은 늘 지배와 피지배의 반복이고, 예술가 역시 먹고 살아야 하는 생산 담당 노동자로써 자신의 예술적 정열이나 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보다 시류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인용해 보자. ‘인간이 자연 속에 설치한 인위적인 구조물들을 통해 풍경은 인간에게 지각되는 동반자 관계에 놓이게 된다. 경계석·도로·기념비를 통해 인간은 자연의 의미를 소유의 의미로 바꾸고, 풍경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증언을 얻고자 한다. 성채는 풍경 속의 지형을 실용적 목적으로 이용한 것이지만, 성채를 건축한 인간들의 심리적인 자세도 드러내 보인다.....정원은 인간의 이성에 맞추어 풍경이 개조된 경우다.....자연 거상을 통해서 우선 군주에게 자연의 힘이 전달되고, 군주는 자연의 혜택을 전달하는 자로서의 우세한 지위를 확보할 수가 있는 것이다.’(p.216~7) 어떤가? 책에서 전개되는 내용이 압축적으로 이해되지 않는가? 15년의 간격을 두고 참으로 독특한 주제의 책을 읽었고, 세상에 쓸모없는 지식은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