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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 죽음의 땅 일본원전사고 20킬로미터 이내의 기록
오오타 야스스케 지음, 하상련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3년 3월
평점 :
일본의 프리랜서 카메라맨인 오오타 야스스케의『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을 1시간 만에 다 읽었다. 아니 읽었다기보다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 만큼 이 책에 실려 있는 사진들은 진실을 담고서 글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준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에 밀어닥친 쓰나미와 뒤 이은 대지진, 그리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온 동물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원전으로부터 20킬로미터 이내의 출입제한 구역에 남겨진 수많은 애완용 개나 고양이, 식용으로 기르던 소와 돼지, 닭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피난을 가버린 주인 가족을 기다리다 굶어 죽거나 더러는 야생화 하여 다른 약한 동물들을 해치는 개의 무리도 생겨났다. 이 책에 실린 사진 중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사람이 떠나간 목장에서 먹지 못해 서서히 굶어 죽어가던 소와 돼지들의 처절한 모습이었다. 고기를 지나치게 탐식해온 인간에게 강제로 사육 당해 그 자체만으로도 괴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 왔을 소와 돼지들의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는, 어쩌면 인간과 자연이 모의한 극한의 잔혹함이리라. 그래도 조금의 희망은 남아 있었다. 꽤 많은 수의 개와 고양이들이 구조됐고 더러는 가족에게 돌아가기도 했으며 다른 가족에게 입양되기도 했다. 어떤 개나 고양이들은 사람을 보자마자 도망가 다시는 볼 수 없었고, 곤타라는 이름의 개는 소와 닭들을 고양이나 다른 개들로부터 보호하느라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으며, 사람만 보면 어리광을 피우며 놀아 달라던 흰둥이도 있었다. 이 동물들에게는 쓰나미도 원자력발전소 폭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일 것이기에 그저 다시 예전처럼 주인 가족과 함께 하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정작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즉, 쓰나미는 불가항력이었다 해도 지진과 해일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에 과연 원자력발전소가 꼭 필요한 에너지원인가 하는 점 말이다. 원전 폭발 이후 전력대란은커녕 일본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지 않은가? 결국 원자력발전소의 존재 이유는 차후 핵무기 확보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도 원전 마피아라는 용어와 함께 그 부정과 부패가 도를 넘은지 오래지만, 원자력발전이란 개념 자체가 어마어마한 위력의 핵병기로 전용될 수 있는 도덕적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드시 원자력이어야 했을까? 1986년 4월 26일 소련의 체르노빌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이후 지금까지 그곳은 금단의 땅이고 아무도 돌아 갈 수 없는 유령마을이 되고 말았다, 후쿠시마의 15만 원전 난민도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아니, 돌아갈 수는 있는 것인가? 한국은 어떤가? “부산과 울산 사이에 핵발전소가 6개나 있는 나라, 거기에 2개를 더 짓고 있는 나라,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과 핵단지가 불과 30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나라, 핵발전소 밀집도가 세계 1위인 나라, 오래되어 삐거덕거리는 핵발전소를 앞으로 더 쓸 예정인 나라, 1000킬로미터 밖 핵발전소의 사고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배짱을 가진 나라.”(강은주,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 아카이브, 2012) 이것이 원자력발전소와 관련 있는 현재 한국의 모습이다. 아주 심각한 상태이지만 누구 하나 진지하게 사유하지도 않고 걱정은 더군다나 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소 건설과정에서 주민과 주민, 주민과 정부 사이의 갈등만 부각될 뿐, 불량부품이나 정비의 미비로 인한 폭발의 위험성은 늘 아슬아슬하게 무마되고 만다. 만약(정말 만약이길 바란다. 왜냐하면 뉴스 등에서 보도되는 한국의 원자력발전 관련 보도는 대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정부의 에너지원 확보 노력에 따른 필요성 내지 당위성만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후쿠시마 정도의 폭발 사고가 실제로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월호 침몰사고에서도 충분히 보았듯이 과연 제대로 수습할 매뉴얼은 마련되어 있을까? 그동안 뉴스 보도를 통해 단편적이나마 알게 되었듯, 얼마나 많은 부정과 부패가 원자력발전과 관련하여 얽혀 있을지, 부패의 사슬이 워낙 길고 단단하여 자신의 목숨으로 책임질 사람은 있을지, 아니, 일본보다 작은 땅덩어리 어디에 방사능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이 남아 있을 것인지, 상상만 해도 가공할 재앙이라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에너지가 모자라면 국민을 더 계몽해서라도 아끼도록 하면 될 것 아닌가? 또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대체 에너지 개발에 더 전념하면 될 것 아닌가? 예를 들어 나는 에어컨도 없고 자동차도 없다. 게다가 나는 평소에 에너지를 아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씩 아끼면 될 일 아닌가? 이렇게 노력해 나가면 구태여 원자력발전이 필요할까? 그런데 편리함과 안락함에 젖은 대다수 한국인들이 과연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을까? 올 여름도 집집마다 비록 냉방병에 걸릴지언정 매일 에어컨을 시원하게 가동할 것이고, 문 닫고 있으면 장사가 안된다고 변명하면서 에어컨을 강하게 켜둔 채로 영업장의 문을 활짝 열어 두겠지. 이러니 누가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하겠는가? 에어컨을 돌려주는 그 전기를 원자력이 제공해준다고 막연하게 느끼면서 청정에너지원이라는 원자력에 슬그머니 동조하겠지. 참, 어렵고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후쿠시마에 버려진 동물들의 가련하고도 기막힌 운명에 마음이 울적했는데, 그럼에도 아낄 줄 모르고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한없는 욕심에 분노가 치미는 혼란스러운 마음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인간은 앞으로도 자신들의 행태를 바꾸지 않을 공산이 크다. 과학기술이 가져다 준 편리와 안락에 대한 탐닉, 자연을 파헤치고 분석해서 조금 알게 된 지식의 독점, 소와 돼지, 닭 등의 가축에 대한 비인간적인 밀집 사육, 가난한 나라를 희생시켜서라도 자신들의 에너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강대국의 오만, 핵무기를 합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의 당위성 등. 후쿠시마를 떠돌고 있는 한 고양이의 눈이 나를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