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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아이라 바이오크 지음, 곽명단 옮김 / 물푸레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Yanni의 「You Only Live Once」의 피아노 선율이 거실을 채우고 있는 지금, 습관처럼 나의 죽음에 대해 명상을 해본다. 내 임종 시 나는 형제자매나 아들, 손자에게 어떤 말을 하고 눈을 감게 될까? 행복하게 잘 살라고 말할까, 아니면 아쉬움 없이 살라고 말할까? 나를 포함하여 누구도 예외 없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오게 마련이고 죽음 직전에 이르러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텐데, 과연 어떤 말이 나중에 떠날 사람에게 작은 깨달음이라도 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무슨 말을 했을까? 오직 한 번 살고 한 번 죽는 것이니, 세상에 태어날 때의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죽음의 순간은 존재로써의 자신의 소멸을 체험함과 동시에 지상을 떠나야 한다. 어찌 하고 싶은 말이 없겠는가? 미국의 호스피스 전문의인 아이라 바이오크 교수는 자신이 30년 동안 수천 명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써 내려간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에서 이것을 단 네 마디로 압축한다. “용서하고 용서해 주세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잘 가요.” 무슨 거창한 말을 기대했다면 실망하기 십상이겠지만, 사실 이 네 마디는 가족이어서, 친구여서, 연인이어서 더욱 하기 힘든 말이 아닌가? 당신은 지금까지 타인을 몇 번이나 진심으로 용서했는가? 아니면 타인이 당신의 잘못을 진정 용서해준 적이 있는가? 당신은 하루에 당신의 가족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또는 사랑한다고 말하는가? 아마 거의 말하지 않거나 생각조차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는 적이 더 많을 것이다. 너무 가까운 사람이라 또는 그냥 어쩌다보니 가족이니까 그래서 형식적으로 변해가도 그저 그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작 이 네 마디 말이 그 서먹한 사이를 회복시켜주고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인간에게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모순이 많고 자기중심적인가? 또한 얼마나 쉽게 타인을 증오하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가? 현대사회처럼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을 쏟는 극단의 이기적인 분위기 속에서, 타인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고마운 존재로 받아 들여 기꺼이 자신을 내어 줄 수 있기란 아무리 죽음이 가깝다 해도 쉽게 실천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죽음조차도 후회나 아쉬움 또는 미안함 따위의 감정이 결코 소용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용서하고 용서해 주세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잘 가요.” 이 네 마디가 살아 있는 동안 이토록 절실하고 그 어떤 꾸밈의 말보다 더 큰 치유와 내면의 성숙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핵심임에랴. 어쩌면 인간은 상처주고 상처받는 것에 익숙한 동물일지도. 그래서 용서와는 더욱 멀어지고 마는 어리석은 동물일지도. 타인의 죽음은커녕 자신의 죽음조차도 그 직전까지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기에, 용서와 사랑, 고마움 등의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조건들마저도 이토록 쉽게 무시되는 것은 아닌지. 대구 지하철과 세월호의 희생자들이 남긴 마지막 말도 결국 “고마워요.”와 “사랑해요.” 였다. 너무 늦기 전에 가족과 친구에게 말하라, “용서하고 용서해 주세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라고.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말하라, “잘 가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