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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평점 :
책을 좋아하고 독서에 전념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책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하고 열정적으로 해설하며 책에 관한 것이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동서고금을 초월한다. 『책인시공(冊人時空)』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회학자이면서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이력을 살려 책과 독서와의 관계를 지극히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가고 있다. 책읽기에 좋은 시간부터 절로 책을 읽게 하는 공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프랑스 파리 체류 경험부터 타인의 경험까지 분산되고 파편으로만 존재하던 인간과 독서의 시공간을 한 자리에 모아 두루 엮어나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 뿐인가, 서재론(書齋論) 및 관리법, 서점과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이 책 한 권이면 책이라는 인간의 가장 걸출한 발명품에 대해 경외감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특히 이동하면서 책을 많이 읽고 그것을 즐겨 행하는 데, 전철이나 시외버스를 독서의 시공간으로 활용해 온 나의 경험도 이 책에서 하나의 사례로 소개되어 무척 기뻤다. 이제 생각해보니, 대학 시절 내가 즐겨 찾았던 나만의 독서 시공간은 대학 뒤에 있던 산 중턱 어느 커다란 바위 아래 푹 들어간 좁은 틈 이었다. 나는 수업이 없거나 주말이면 산에 올라 그 곳에 비집고 들어가 책을 읽곤 했다. 대부분 문학서나 프리드리히 니체 류의 짧은 단상을 담은 철학서 등이 주요 독서 대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의 독서 시공간은 내게 무엇을 배태시켰고 무슨 사상을 낳게 했는가? 지금의 나는 20대 청년시절의 꿈과 희망에서 얼마나 멀어졌고 얼마나 세상과 쉽게 타협하는 어른으로 변절했는가? 돌이켜 보면 당시의 독서 시공간이야 말로 내가 세상의 모순과 대면하고 그에 저항하며 가능한 도덕적으로 살고자 노력했던 내 젊은 날의 소중한 혈거(穴居)이자 내 육체와 정신의 안식처였다. 지금도 그대로 머물러 있을 그 자리와 그 시간. 책은 어디에서 언제 읽느냐에 따라 인식의 차원까지도 전혀 다르게 흔적을 남긴다. 세상의 수많은 책은 펼쳐서 읽어야 비로소 내 정신에 득이 되고, 인간으로 들끓고 있지만 정작 참된 인간은 드문 이 악다구니 속에서 내가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나를 북돋아 준다. 이제 남은 삶 동안 내 서재의 조용한 시공간에서 더 많은 책을 읽고 오직 책에 둘러 싸여 살다가 아주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