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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읽기를 권함 - 우리시대 어느 간서치가 들려주는 책을 읽는 이유
김무곤 지음 / 더숲 / 2011년 10월
평점 :
나는 종이 책을 최초로 읽었던 때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여기서의 종이 책은 교과서나 신문 또는 잡지를 제외한 순수 문학서를 뜻한다. 때는 1975년 인왕초등학교(당시엔 인왕국민학교) 3학년의 봄 소풍날이었다. 소풍날 아침 아버지께서는 1000원을 용돈으로 주셨는데(그 당시 1000원이면 큰 돈이었지), 소풍 장소까지 따라온 장사치에게 100원짜리 망치하고 우주팽이 따위의 장난감을 사고 난 뒤 400원 정도를 남겼는데, 그것은 책을 사려는 계획 때문이었다. 소풍이 다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서점에 들려 책꽂이에 즐비하게 꽂혀 있던 책 중 한 권을 골랐다. 그것은 동서문화사판 딱따구리 문고 중 하나인 시내암의 『수호지』였다. 가격은 290원. 서점주인 아저씨께서 “책 값 참 싸구나.” 라고 말씀하신 것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별 걸 다 기억한다고 할 지 모르지만 수학 공식은 지금도 절대 외우지 못한다). 내가 다녔고(1973∼1978)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 인왕초등학교 부근 서대문 세무서 근처 한 쪽에 있던 「욱일서점」은 내 어린 시절과 중고교 시절의 진짜 보물섬이었다(지금은 서점이 있던 자리에 다른 업종이 영업하고 있다. 아쉽고 아쉽다). 그 어린이용 『수호지』를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던지. 지금까지 나는 정식으로 완역 수호지를 읽지 않았지만, 당시 읽었던 그 『수호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참 많은 종이 책을 읽었고, 샀으며, 여전히 종이 책을 애호하고 있다.
서론이 길었다. 김 무곤의 『종이 책 읽기를 권함』을 읽고 나서 감흥에 빠져 있다 보니 참 많은 상념들이 지나간다. 이 책도 그러한 추억과 지나간 시공간을 잊지 못하고 소중히 간직해 온 한 독서광의 지극히 내밀하면서도 책에 대한 애정 가득한 고백록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의 교감이랄까,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책에 관한 애정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다. 책읽기에 끝이 있을까? 내 육체가 소멸하는 그 날이 물리적 독서의 끝이겠지만, 그 때까지는 더욱 부지런히 읽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내 임종 자리에서 나는 어떤 책을 읽다가 눈을 감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