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과 국민 사이 -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사유와 성찰
서경식 지음, 이규수.임성모 옮김 / 돌베개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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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을 읽고 처음 알게 된 뒤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고 나서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있던 서경식 선생의 가족사와 재일 조선인으로서의 양가적 사유체계를 담고 있는 <난민과 국민사이>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책 곳곳에 나오는 저자의 두 형과 부모님이 겪었던 가슴아픈 일들, 일본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수십만 조선인들의 스산했던 삶에 대한 통렬하고 절절한 사연들,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사회의 한결같은 차별과 노골적인 무시 내지 외국인 혐오증의 도를 넘은 일본정부의 정책 등, 국가에 귀속되어 세금을 내면서 투표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남한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처연함에 수시로 책을 내려 놓고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과거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사과하지도 않으면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식과 다른 민족에 대한 적대감을 강화하며 국가주의로 급속히 기울어 가는 일본, 더욱이 이미 세계 유수의 군비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이 헌법상의 제약마저 벗어 던진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p.9) 헌법 제 9조의 수정조항을 둘러싸고 일본이 벌여온 일련의 행동들은 과거 아시아를 지배하던 제국주의 시절을 다시 한 번 재현하고 싶어하는 야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대한국관은 과거 대조선관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않았다. 과거 "...센진(조선인에 대한 멸시적 표현)의 썩은 머리를 깍을 기계는 없다며 이발을 거부하고 쫓아 보낸다, 정거장 대합실에서 자리를 양보하라며 구둣발로 찬다, 오늘은 조선이 일본에 패한 날이라며 조선 아이를 욕하는 소학생..."(p.50) 등의 조선인에 대한 일상적 차별은 저자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조센, 조센, 꺼져, 꺼져"(p.55)라는 경험과 겹치며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민족적 차별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그만 울컥해진다. 정신대에 대한 대목에서는 일본인들의 후안무치하고, 조선을 식민지배했던 과거의 오만함이랄까,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편견의 극한에 그만 일본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이 스칠 정도로 깊은 인식의 골이 패여 있다. 여기에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광범위한 역사왜곡까지, 일본과 얽힌 악연은 언제나 한국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날 수 밖에 없다. 현재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들 대부분은 일제시대 때 강제동원되어 일본의 탄광 등에서 노동하다 죽어간 조선인들의 후손이다. 말하자면 일본이 필요에 의해 (그들 표현대로) 내지에 끌고 와 실컷 부려먹고는 해방 후 모든 권리를 박탈한 채 방기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이 조선을 강제 합병하지 않고 구미의 마수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하겠다는 비논리적인 정책을 펴지 않았더라면 결코 일본에 살지 않았을 사람들이 바로 재일 조선인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모든 책임은 일본에게 있는데 도리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비윤리적인 태도가 재일조선인들을 절망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해방 후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이 얽어맨 저자의 가족사 역시 비극 자체다. 고국인 남한으로 유학 온 저자의 두 형들은 간첩으로 몰려 꽤 오랜 시간동안 옥살이를 했고, 저자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인간의 조건에 대해 깊은 성찰에 이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제국주의나 대량학살로 인해 조국을 등질 수 밖에 없었던 디아스포라적 인식에 눈을 뜨게 되었고 모든 폭력과 정치적 희생자에 대한 연민내지 연대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보자. 나를 포함한 현대의 한국인들은 재일조선인(이 표현은 저자가 고집하는 표현이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와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또한 일본에 대해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해방 후 한국의 정책이 재일조선인들에게 얼마나 조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는가? 아니, 재일조선인들에 삶에 대해 생각이나 제대로 해보았던가? 그들이 얼마나 차별을 받았을지, 얼마나 스산한 삶을 이어왔을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민족 차별에 일본으로 귀화하는 조선인을 단순히 비난하며 도덕적인 단죄를 강요하지는 않았는가? 사실 나도 서경식이라는 이름을 알기 전 까진 재일조선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서경식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차별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한국인의 후손으로써 일본 사회에서 계속적 투쟁을 하겠다는 결의임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재일조선인 개개인의 삶에 대해 어렴풋하나마 관심이 생긴 것에 불과하다. 처절한 반성을 해야 할 대목이다.  

서경식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출판된 책들을 모두 읽어서 그동안의 나의 무지와 무관심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글을 마치기 전 몇 가지 질문을 제시해 보겠다. 지금도 외국인등록증 상시 휴대를 의무화하여 재일조선인들을 치안방해의 대상으로 항상 감시하는 일본정부의 비뚤어진 자세가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의 재현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한국의 대일본관은 과연 어느 선상에 서있는가?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이용해야 하는 경제적 파트너인가? 아니면 북한의 핵위협에 공동대처하며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군사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전략적 파트너인가? 일본인을 믿어야 하는가? 국가로써의 일본과 일본국민은 어떻게 다른가?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일본과의 공생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 한 번씩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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