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대문자의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래 "'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사전상의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유대인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좀더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소문자 보통명사diaspora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p.12)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책 뒤에 내가 적어 놓은 독서후기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도대체 인간은 언제쯤이나 진정한 평등과 평화를 이룰것인가? 그 때가 오기는 할 것인가? 여전히 저개발과 기아, 가난, 종교 및 민족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인간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 2008.7.6(日) 완독"
이 책을 읽었던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대만과 일본, 일본과 한국간의 영토분쟁이나 어업분쟁이 오래도록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역사 왜곡 역시 도를 넘었고,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세계 각지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테러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종족 간 내전이 끊이지 않고 러시아나 독일의 인종차별 역시 우려의 단계를 넘어섰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정부와 권력기구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희생되는 민간인들의 숫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유대인이 유럽 각지에서 본격적으로 추방되기 시작했던 14세기 이후, 크고 작은 전쟁이나 내전으로 인해 계속 발생하고 있는 난민들은 결국 제 나라를 떠나 타국에서 떠돌거나 남은 生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즉, 국가경영의 의무를 게을리하고 오직 권력유지에만 골몰한 탓에 정작 백성들은 굶주림과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다 조국을 떠날 수 밖에 없는 기막힌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서경식씨는 재일조선인 2세다. 그 역시 디아스포라의 숙명을 가지고 태어나 평생 뿌리 뽑힌 자로 살아 온 한국근현대사의 비극적 구현체인 셈이다. 일본제국주의와 소수 매국노의 밀약으로 대한제국이 병합된 이후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조국을 떠나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지로 떠돌며 스산한 삶을 이어가야 했던가. 조국에서도 버림받은 이들이 다른 곳에서 환영을 받았을리가 없지 않은가? 러시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 역시 국제정세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국권을 강탈당한 조국의 무능함으로 인해 생겨난 디아스포라들이 아닌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소수 권력자와 그 아래에서 이권을 챙기는데 골몰하고 있는 하수인들만의 이기적 행태가 계속될 때 디아스포라가 생겨난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남북의 이산가족 역시 예외가 아니다. 결국 디아스포라는 일차적으로 한 국가의 정치적 무능함과 무관심에서 생겨나고, 근대 제국주의 처럼 타국을 침략해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려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심성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에 대한 평균적 한국인들의 폭압적인 시선이나 과거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에게 자행했던 정치적 박해가 무엇이 다른가? 어쩌면 인간은 나와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타인과 그 집단에 대한 태생적 거부감과 멸시, 그로 인한 폭력과 추방 또는 집단학살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나머지 그렇게 강제로 뿌리 뽑힌 자들의 심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없는 지경에 이른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서로를 증오하고 그 증오가 정치적 무능함 또는 왜곡된 시선과 결합될 때마다 세계 각지에서는 계속해서 디아스포라들이 생겨날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결국 인간 심성이 만들어낸 편견과 증오의 산물이니까. 언제쯤 참다운 평화가 인간의 마음 속에 깃들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