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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문명충돌의 역사 - 종교갈등의 오랜 기원을 찾아서
자크 G.루엘랑 지음, 김연실 옮김 / 한길사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도 있듯, 옛부터 지금까지 전쟁이 없었던 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을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하려 해도 그 밑바닥에는 인간의 욕망이 꿈틀댄다. 영토와 자원을 독점하고 싶은 그 욕망 말이다. 이러한 인간의 성향은 소위 <성전>도 예외가 아니다. 자크 G. 루엘랑의 <성전, 문명충돌의 역사: 원제는 Histoire de la Guerre Sainte로 (성스러운 전쟁의 역사)>는 200 페이지가 채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그럴듯한 명분과 종교적 광신이 결합되어 많은 희생과 교회권력의 부침을 가져왔던 <성전>에 대해 압축적이고도 적확한 해석으로 명쾌한 시각을 제공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이 <성전>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가 "종교와 관련된 전쟁(또는 신적인 전쟁)에 종교와는 무관한 전쟁(인간적인 전쟁)을 대비시켜주기 때문이다. 즉 정당한 전쟁"(p.20)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벌이는 전쟁이 신의 명령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가능한 모든 폭력수단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 정당한 권리라는 뜻이다. 작년에 읽었던 Bertrand Russell의 Unpopular Essays에 "인간이나 국가를 사로잡는 가장 해로운 망상은 그들 스스로가 신의 의지에 따르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대량 학살과 약탈로 점철되었던 소위 <십자군 전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아닐 수 없다. 1095년에 교황 Urbanus 2세에 의해 발의되어 15세기까지 계속되었던 십자군 전쟁은 표면적으로 이슬람 세력에 의해 봉쇄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기독교 교리의 확산에 주력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이슬람이 지중해의 해상권을 잡고 있던 그 시대에 중동 지역과 유럽 사이의 무역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p.86)다는 것이 진실이다. 한마디로 배가 아팠다는 것. 이슬람이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면서 벌어 들이는 부에 눈이 멀었던 것이다. 본질적인 욕망을 종교적 명분으로 살짝 가려 <성전>이라 칭한뒤 실제로는 식민지의 확보와 자원 약탈에 골몰했던 십자군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2003년 부시와 네오콘들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십자군 운운하며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 의 수거라는 명분 대신 이라크의 풍부한 석유를 확보하고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음과 같은 맥락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목적은 자국의 이익 극대화라는 이기적 욕망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고 민중의 희생을 강요할 뿐이다. 세상에 성스러운 전쟁은 없다. 전쟁에 아무리 성스러움을 갖다 붙여도 생명을 빼앗겨야 하는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고통과 트라우마 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