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맨 (리커버 에디션)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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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유부녀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연속으로 일어난다.

비르테 베케르는 남편이 다른 도시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간 날 한밤중에 집에서 사라졌다. 새벽에 일어난 아이는 엄마가 집에 없다는 걸 알아채고 바깥으로 나갔을 때, 집 앞에 누군가 만들어놓은 눈사람이 엄마의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걸 본다.

그리고 며칠 뒤, 집 헛간에서 손도끼로 닭의 목을 자르던 쉴비아 오테르센은 누군가에게 쫓겨 숲으로 달아나다 그에게 잡힌다. 쌍둥이 딸들과 집에 돌아온 남편이 경찰에 신고를 해 해리가 현장에 오게 됐고, 숲을 돌아다니다가 눈사람 위에 쉴비아의 잘린 머리가 얹어진 것을 발견한다.

 

사건은 연쇄살인일지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수사를 시작하지만, 비르테와 쉴비아는 연관 지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두 사람의 아이들이 같은 병원에 다녔다는 사실을 알아내 병원을 찾게 된다. 성형수술과 특수수술 전문이었던 원장 이다르 베틀레센이 비서도 모르게 특별한 유전 형질에 관한 진료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5년 전에 제일 처음 읽었던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일곱 번째 시리즈를 다시 읽었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찾아 읽으면서 이 소설은 건너 뛸 수도 있었지만, 읽는 김에 다시 읽었다.

 

소설의 시작은 1980년 어느 겨울에 엄마가 아이를 차에 남겨 두고 어떤 집에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다른 남자와의 정사를 위해 찾은 곳에서부터 스노우맨의 살인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92년 겨울, 스타 형사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피해자의 장신구 및 물건을 훔치다 걸려 명성이 떨어진 게르트 라프토가 재기를 꿈꾸며 난도질 된 시신 사건을 조사하는 모습도 잠깐 등장했다.

 

여러 사건이 일어나며 용의자도 이쪽저쪽으로 포인트가 맞춰졌지만, 어째서인지 범인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추리에 약한 내가 범인을 맞힌 몇 안 되는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범인을 알고 있더라도, 그리고 두 번째로 읽는 책이었을지라도 사건이 전개되며 수사를 진행하는 모습은 처음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특히 결말에 이르렀을 때 해리가 여전히 사랑하는 라켈이 범인의 표적이 되어 잘못하면 목이 잘릴 수 있는 위험천만했던 상황은 어떻게 될지 아는데도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정말 위험한 도구로 기발하게 덫을 놓아서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범인과의 마지막 대결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시리즈의 범인이 늘 그랬듯 이 소설의 범인 역시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그 이유는 불륜을 저지른 건 백번 잘못한 일이지만, 그걸 본인이 판단하고 벌을 내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불륜을 저지른 여자는 죽였으면서 남자는 죽이지 않은 것도 모순이고 말이다. 아무튼 미친 인간이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으며 해리의 인생이 어땠는지 알게 된 후에 다시 읽은 이 책에 대한 느낌은 조금 다르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고 읽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다시 읽으니 해리가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술을 마시긴 하지만 이전 시리즈와는 다르게 마시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라켈을 향한 감정이 얼마나 애달프고 깊은지도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에 그렇게 필사적이었던 모습에서 해리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라켈이 잘못됐더라면 해리 홀레 시리즈는 이 소설에서 끝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라켈은 살렸지만 다시 만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관계와 이제는 손가락도 하나 없어진 해리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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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리 어게인 - 내 삶의 목적
W. 브루스 카메론 지음, 이창희 옮김 / 페티앙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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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 근처에 사는 떠돌이 어미 개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중 한 마리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형제들을 관찰하며 어미 개에게서 떠돌이 생활을 배운다. 그러다 어떤 사람들에게 붙잡혀 가게 되어 많은 개들이 있는 곳에서 한동안 편하게 살지만, 그곳을 찾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내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이게 웬걸, 개는 다시 강아지로 태어났다. 이번에 태어난 곳은 많은 개들이 가둬진 곳에서 어미 개가 새끼를 낳는 일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강아지 공장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강아지는 지난 생의 어미 개가 문 손잡이를 열고 나갔던 방법을 이용해 강아지 공장을 빠져나온다. 그러다 어떤 사람에게 붙잡혀 한동안 더운 차에 갇혀 괴로워하다가 그곳에서 그를 구해준 여자와 함께 가게 된다. 그녀의 집에서 어린 소년 에단을 만난 강아지는 단번에 그와 사랑에 빠진다.

 

 

 

 

 

 

이전 생의 기억을 가지고 윤회를 거듭하는 개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영화로 먼저 만나봤었다.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대체로 비슷하게 흐르기 마련이지만, 뻔한 이야기임에도 항상 좋았기 때문에 영화를 정말 즐겁게 봤었다. 사랑스러운 개들이 똑똑하고 연기도 잘해서 정말 예뻤고 웃음과 감동을 줘서 좋았던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잊고 있다가 원작이 궁금해져서 뒤늦게 읽었다.

 

첫 생에서 떠돌이 개로 살다가 처음으로 사람의 손길을 탔을 때, 토비라 불리게 된 그는 단번에 사람이 좋아졌다. 마치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토비가 사람에게 붙잡혀 온 곳의 "세뇨라"라고 불리는 여자는 떠돌아다니는 개가 불쌍해서 마구 데려오고 예뻐해 주긴 하지만, 허가받지 않은 일이었고 이웃 등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개들은 안락사를 당하게 됐다. 너무 짧은 생이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 생에서 개는 영원히 기억할 첫 주인 에단을 만나 베일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학교를 제외하곤 어디든지 함께 다녔고, 놀 때도 잘 때도 당연히 에단의 곁에는 베일리가 있었다. 슬플 때나 기쁠 때 함께 했고, 에단이 위험할 때는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는 한결같은 친구였다. 베일리의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예뻤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사고를 치기도 했지만 착한 개라고 불렸던 것처럼 베일리는 정말 똑똑하고 충성스러웠다.

하지만 개는 사람보다 짧은 삶을 살기 때문에 베일리는 늙어서 세상을 떠나고, 어김없이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 엘리, 베어라는 이름 등으로 불려도 언제나 에단을 기억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에단처럼 어릴 때부터 친구로 지내며 늙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떠돌아다니는 개가 불쌍하다며 무작정 데리고 오는 세뇨라처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남자친구에게 강아지를 선물 받고 집에서 혼자 지내게 하다가 나중엔 돌볼 수 없으니 엄마에게 맡기는 여자와 개 때문에 벌금을 낼 수 없다며 차에 태워 멀리 데려가 버리는 남자가 있었다.

말 못 하는 동물을, 그것도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는 동물에게 어떻게 그렇게 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강아지를 데려왔다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쳐 짖지도 못하게 하고 나중엔 버리기까지 하다니,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천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고 나쁜 사람이 있다는 소설 속 문장이 정말 와닿았다.

 

영화를 먼저 봤기 때문에 내용이 어떻게 흐를지, 이후에는 어떤 사건이 등장할지 대충 알고 있었지만 베일리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고 어떨 땐 뭉클해져서 눈물이 찔끔찔끔 나기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엔 갑작스러운 모습에 놀라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베일리의 삶의 목적은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랐지만, 결국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사랑을 주고 자신이 몇 번의 생을 사는 동안 기억했던 에단을 향한 사랑이었다. 첫 주인을 영원히 사랑하며 기억하는 삶이었고, 그에게 행복을 주는 게 목적인 삶이었다. 이런 개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린 강아지부터 성견, 늙은 개의 행동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마치 개의 입장에서 쓴 것 같다고 느껴졌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 특히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개의 행동에 공감하며 웃고 행복해질 수 있는 소설이었다.

 

내 삶의 목적은 에단을 사랑하고 에단에게 사랑받고 에단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 P220

내가 그렇게 착한 개라면 왜 나는 내 주인에게 버림받는 걸까? - P345

"세상에 나쁜 개는 없어. 나쁜 사람이 있을 뿐이지. 개들은 사랑이 필요할 뿐이라고."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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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읽다, 쓰다 -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김연경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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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러시아 문학을 번역한 번역가 겸 소설가인 김연경 작가님의 책에 관한 에세이를 읽었다. 몇 주 전에 읽은 <세계문학 브런치>가 문학을 소개하는 입문서 느낌의 책이었다면 이 책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간 심화편이었다.

 

안 읽어봤지만 작가와 대강의 내용을 알고 있는 <돈키호테>를 시작으로 7개의 챕터로 나누어 각각의 주제에 맞게 여러 책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내가 유독 많이 읽은 고전소설이 밀집되어 있던 챕터가 있는가 하면, "실존과 부조리"라는 부제를 단 챕터의 책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놀라움을 줬다. 작가의 이름에서부터 어려움이 팍팍 느껴져서 왠지 안 읽고 싶지만 읽으려고 목록에는 담아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이 대표적인 예였다.

 

 

 

 

"근대, 야망"의 챕터는 이성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인간의 본능적인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는 소설을 소개했다.

속물적인 야망이 가득한 <고리오 영감>, 소원을 이뤄주는 악마와의 계약인 <나귀 가죽>,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간 되어 읽는 내내 욕을 했었던 <마담 보바리> 등이 있었다. <나귀 가죽>은 아주 오래전에 읽었었는데, 책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읽으니 다시 읽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어릴 때 읽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보다 영화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가 더 익숙했다. 이 부분을 읽고 찾아보니 니체의 책을 읽은 슈트라우스가 영감을 받고 교향시를 작곡했다고 하여 인상적이었다. 니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어려움 때문에 막연한 거부감이 들지만, 나중에 먼 훗날 읽어봐야겠다.(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몇 편 소개했는데, <리어왕>에 대한 프로이트의 언급이 재미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재산을 주지 말라는 명쾌한 답이었다!

 

"소설 이상의 소설" 챕터는 때론 환상적인 문학을 소개했다. <프랑켄슈타인>이라든지, <파리의 노트르담>, <검은 고양이> 등이 있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는 대략의 줄거리만 읽었는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챕터 중 가장 많이 읽은 책들은 일상과 가까운 내용을 담은 소설이었다. <제인 에어>와 <위대한 유산>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찰스 디킨스의 책은 두 권밖에 안 읽었지만 작가의 인생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통해 그의 소설과 동화가 왜 항상 해피엔딩, 권선징악인지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인생이나 품행이 그의 글에 반영되기도 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제목은 유명하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대서사시라고 말하며 등장인물이 500명이나 된다는 말에 정말 깜짝 놀랐다. 며칠 전에 어떤 책을 120페이지까지 읽는 동안 등장인물이 40명이 넘어가길래 안 읽겠다고 포기했는데 500명이라니... 거기다 의식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글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아쉽지만 프루스트의 유명한 소설은 읽고 싶어도 못 읽을 것 같다.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읽었을 <어린 왕자>가 동화인지 소설인지 말하는 부분에서 생텍쥐페리가 유일무이한 장르라고 하는 부분은 왠지 뭉클했다. 정말 어릴 때 읽고 안 읽은 것 같은데 다시 읽고 싶어졌다.

 

 

 

 

목차에는 총 71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헤아려보니 그중 내가 읽은 책은 1/4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현대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기도 하고, 몇몇 소설은 메모 어플에 저장해놓은 읽을 책 목록에만 아주 오랫동안 담겨있기 때문일 터였다. 그리고 지난번에 인식했던 것처럼 러시아 문학이나 작가의 이름부터가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드는 소설은 유독 멀리하는 것도 있고.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좀 다양하게 읽어야 할 텐데 그게 참 어렵다. 그래도 올해 초부터는 계획하고 읽은 책들이 있어서 그래도 제법 고전이나 유명한 소설을 몇 편 읽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독서 에세이는 때론 읽기도 전에 지레 겁먹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체로 좀 더 폭넓고 깊이 있는 독서를 하도록 활기를 불어넣는 것 같다. 올해가 세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안에 이 목록에 있는 책들 중 한 권은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 이 리뷰는 민음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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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워줄게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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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개월 전, 아빠 탐이 가방과 옷 주머니에 돌을 넣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 그리고 7개월 뒤 엄마 캐럴라인이 아빠와 똑같은 방법으로 같은 자리에서 뛰어내렸다. 갑자기 부모를 모두 잃은 애나는 절망에 빠졌다. 그녀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상담사 마크를 찾아갔다가 잠자리를 하게 됐고, 딸 엘라가 생겼다.

 

부모님이 남긴 집에서 마크와 동거하며 엘라를 키우는 애나는 엄마의 1주기 날에 카드를 한 장 받는다. 주소가 쓰여있지 않은 봉투 안에는 "자살일까? 다시 생각해봐."라는 짧은 글의 카드만 들어있었다. 애나는 여태까지 의문을 가져왔던 부모님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살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카드를 들고 경찰서를 찾아가고, 형사 은퇴 후 민간인 신분으로 경찰서에서 일하는 머리가 사건을 혼자 조사하게 된다.

 

 

 

 

 

 

 

처음엔 아빠가, 몇 달 뒤에는 엄마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애나는 믿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중고차 판매점을 삼촌 빌리와 운영하여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었고, 부모님은 사이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자살을 할 만한 감정적인 이유도 전혀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 때문에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애나는 너무나 힘들어했다.

그때 마침 집으로 배달된 의문의 카드로 애나는 자살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빌리 삼촌을 먼저 찾아갔지만, 그는 괴로워하며 애나의 말을 믿지 않으려 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찾아간 경찰서에서 사람 좋은 머리를 만나 마을에서 모방 자살로 유명했던 부모님의 사건에 대해 말하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한다.

 

경찰을 찾아간 후 애나는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질 거라 생각했지만 일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 거기다가 누군가가 자꾸만 애나와 가족을 위협하고 있었다. 내장이 보일 정도로 찢긴 토끼가 피 범벅이 되어 집 앞 현관에 놓여있었고, 경찰을 찾아가지 말라는 쪽지가 묶인 벽돌이 딸 엘라의 방 창문으로 날아들기도 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애나는 진실을 찾고자 했고, 1부가 끝나면서 놀라운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수사권이 없는 머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사건을 밝히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어느 날 더 이상 사건을 파헤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는 애나에게 이상한 낌새를 느낀 머리는 때로 아내 세라의 도움을 받으며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

 

소설은 애나의 시점과 머리의 시점, 그리고 애나의 부모 중 한 명인 것 같은 누군가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됐다. 그래서 부모가 모두 살아있을 수도, 적어도 한 명은 살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이 좀 더 진행되면서 그 생각은 왔다 갔다 하며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알던 사람, 그것도 평생 곁에서 봐온 부모의 모습에 이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술에 의존하고 폭력을 일삼으며, 빚을 지고 자살을 계획한 것도 모자라 나중엔 가족까지 위험에 빠뜨리게 만드는 사람이 부모라는 걸 알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 여태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고, 부모 중 한 사람에게 정말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될 터였다.

 

부모의 자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면서 어느 한 쪽을 욕했다가 다시 상황이 뒤집혀 욕한 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에 이 모든 계획에 대한 놀라운 비밀이 밝혀지면서 마지막엔 정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느꼈다. 어떻게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그럴 수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사실 결말에는 모든 사람을 의심했을 정도로 애나 주변 사람들 전부를 믿을 수 없었다. 혹시 저 사람이 공범인가 싶기도 했고, 중간에 과거를 고백한 누군가가 뒤통수를 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만큼 등장한 캐릭터 모두 의심할 부분이 하나씩은 있었는데, 진짜 공범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아서 역시 난 추리는 꽝이구나 싶었다.

 

사건의 진실은 모두 밝혀졌지만 애나의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몰랐으면 싶은, 전혀 개운치 않은 사실이었다. 엘라와 자신이 정말 위험할 뻔했고, 더군다나 절대로 봐서는 안 될 사건을 목격하게 됐으니 그 기억이 평생토록 가슴에 남을 것 같아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열심히 사건을 조사한 머리의 사연도 슬프게 만들었다.

 

때로는 진실을 덮어두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부모님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나는 아빠가 죽기 전으로 수없이 자주 되돌아갔다. 그리고 자살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 P21

나는 부모님 덕분에 웃었다. 두 분은 매사에 흥미를 가졌고 재미있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계획, 정치, 사람들에 대해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골치 아픈 일도 의논했다. 우리 사이에는 비밀이 없었다. 아니, 부모님은 그런 척했다. - P164.165

"때로 사람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기도 해."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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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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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패트릭의 어머니 엘리너가 '마침내' 사망해 장례식이 열린다. 아버지 데이비드와 친했던 니컬러스 프랫을 비롯해 허영 많은 엘리너의 동생 낸시, 패트릭과 이혼한 메리, 메리와 바람을 피웠던 남자, 그리고 패트릭의 전 애인과 친구들까지 모두 장례식에 참석한다.

죽은 사람을 애도해야 마땅한 장례식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에 깊이 빠지고, 심지어는 속물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시리즈의 4편인 <모유>에서 엘리너는 자신의 재산과 프랑스의 집을 아들 패트릭이 아닌 샤머니즘 단체에 몽땅 기부를 했었다. 그 단체의 책임자나 다름없는 셰이머스는 기부를 받기 전까지는 엘리너에게 그렇게 알랑방귀를 뀌어대더니 재산을 모두 기부받자 입을 싹 닦고 요양원에 있는 그녀를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열받은 패트릭은 다시금 알코올 중독 증세에 빠져버렸고, 치매가 와서 말을 못 할 지경에까지 이른 엘리너는 아들에게 죽여달라는 의사 표시를 간신히 했었다.

 

그런 엘리너가 2~3년 만에 사망한다. 생전에 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던 그녀의 장례식에는 옛 친구들과 자매가 참석했고, 장례식 이후 조문객을 대접하는 자리에는 연락이 끊어졌었던 사람까지 찾아온다.

아버지의 친구 니컬러스뿐만 아니라 모르는 척했지만 사실은 우울증 병동에서 본 적이 있는 여자에게까지 부모의 위대한 인성과 선함에 대해 들어야 했던 패트릭의 괴로움이 느껴졌다. 자신이 아는 부모와 타인에게서 듣는 부모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칭찬에 참다못해 시니컬하게 대응을 하면 잘못 키운 자식 취급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과거를 차마 말할 수 없었던 패트릭은 부모에 대해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해보기도 한다. 자신에게만 나쁜 부모였을 뿐이지 실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엘리너의 과거에서 드러난 데이비드의 만행은 비단 패트릭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엘리너가 프랑스 집에 초대했던 어린아이들을 데이비드가 강간했었다고 하니 얼마나 쓰레기 같은 소아성애자였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을 욕하면 좀 그렇지만 패트릭의 아버지는 욕을 먹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추접스러운 인간이면서도 자신의 친구, 지인들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유쾌한 신사였다는 게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데이비드에게서 패트릭을 방치한 엘리너 역시 제 자식에겐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했다. 패트릭 이전에 부부의 첫 아이는 세상에 나온 지 이틀 만에 사망했고, 데이비드는 배를 타고 나가 아기를 버렸다고 한다. 그런 남편이 혐오스러워서 잠자리를 거부했던 엘리너는 강간을 당했고, 그 결과로 태어난 아이가 패트릭이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데이비드 이 미친놈은 대체 어떻게 돼먹은 인간인지 모르겠다고 욕이 절로 나왔다. 한 인간의 바닥 중의 바닥을 보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이런 쓰레기가 존재할까 싶어 무서울 정도였다.

 

20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마저 떠나보낸 패트릭이 후련해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최근엔 우울증 때문에 자살 감시 병실에 입원했던 패트릭이 이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게 한 부모에게 증오의 마음만 있었던 게 아닌 애증이라는, 일말의 애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차마 눈에 보이는 애정을 가질 수도 없었던 패트릭이 안타깝고 가여웠다.

 

패트릭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까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전과는 다른 인생을 시작할 마음을 가지게 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조금은 다행이라 느꼈던 결말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이야…… 아니, 아버지의 죽음 다음으로." - P196

그는 어머니의 가슴에 손을 얹고 그 앙상함에 깜짝 놀랐다. 몸을 구부려 어머니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는 그 차가움에 깜짝 놀랐다. 이 선명한 느낌에 그의 방어 체제는 더 약화되었다. 그러자 그는 앞에 놓인 한 파괴된 인간을 향한 복받쳐 오르는 연민에 압도되었다. - P70

"오늘 내가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분명하지 않은 생각을 가졌는지 계속 깨닫고 있어. 최종적인 진실이란 없다는 것이지. 한 건물 안의 다른 층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 - P249

그가 오늘 느낀 압박감은 유년기로 돌아간 듯한 무엇이었다. 아버지는 분노와 수술칼을 들고 거기에 있었고 어머니는 피로와 술에 절어 거기에 있었다. 이 경험은 하나의 이야기나 한 세트의 관계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깊이 박힌 ‘표현되지 않음‘의 응어리로 존재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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