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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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범죄수사국의 틸리 브래드쇼는 최근 일어난 묘한 사건에 집중하고 있다. 영국 컴브리아 지역에 있는 '환상열석'에서 불에 타 죽은 시신과 관련된 연쇄살인사건이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60~70대 남자들로 부유한 계층이었고, 생식기가 잘려 입에 들어가 있었다. 신변을 확인한 결과 모두들 당분간 집을 비울 예정이었다고 가족과 지인들은 전했다. 실종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게 당연했다는 것이다.

브래드쇼는 다중단층촬영을 한 결과 세 번째 피해자의 시신에서 상처로 새겨진 글자를 발견한다. 정직된 경관 워싱턴 포의 이름과 숫자 5였다. 브래드쇼는 그가 다섯 번째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 스테퍼니 플린 경위에게 보고한다.


브래드쇼에게 관련 보고를 들은 플린은 포를 찾아갔다. 정직 처분을 끝내고 업무에 복귀하라는 지시를 할 참이었는데, 그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환상열석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수사에 참여한다.




불에 타는 게 가장 고통스럽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해서 차라리 죽었으면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두 번째로 큰 고통은 신체 절단이라고 하는데, 소설 속 연쇄살인범은 이 두 가지 모두를 해냈다. 피해자가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생식기를 잘라 입에 넣고 불을 태워 죽인 것이다. 피해자들의 연령대가 엇비슷하고 모두 부유했는데, 하필이면 생식기를 잘라 입에 넣었다는 부분으로 인해 성적인 부분과 관련된 복수라는 걸 암시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초반에는 소설의 정보를 흡수하느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세 번째 피해자의 신체에서 정직된 형사 워싱턴 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 그가 수사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무리 봐도 그는 세 명의 피해자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나이도 30살 정도 차이 났고, 경찰이라 부유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수사에 합류했는데, 곧이어 네 번째 피해자가 발견되었다.

소설은 범인을 찾고 다음 피해자를 막는 데에 집중했다. 플린이 사건의 중심을 잡으며 포와 브래드쇼를 이끌었고, 포의 10대 시절부터 친구이자 경찰인 킬리언 로드가 합류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예상치 못한 부분으로 빠져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톨룬드 맨'이라고 불리던 퀜틴 카마이클이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그가 환상열석 사건의 범인을 지칭하는 '이멀레이션 맨'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26년 전 사건이 현재 일어나는 사건과 흡사한 부분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다 우연찮게 고가의 브라이틀링 시계가 수사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소설은 빠르게 사건의 중심부로 향해 갔다. 그렇게 드러난 비밀은 정말 역겹고 끔찍한 것이었다. 피해자라고 불리기도 아까운 그들은 그렇게 죽어도 마땅한 자들이었다. 기나긴 세월을 거쳐 복수를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처음엔 이멀레이션 맨이 누구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는데,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밝혀지기 직전에 알아챘다. 매번 범인을 맞히지 못했지만 이번만은 성공했다.


자주 읽는 스릴러 장르이지만 이 소설이 유독 흥미를 끈 건 워싱턴 포와 틸리 브래드쇼라는 매력적인 캐릭터 때문이었다. 포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형사 캐릭터라 여느 소설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아이큐 200의 천재인데 사회성이 전혀 없어서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20대 중반의 브래드쇼를 만나 왠지 모르게 웃긴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다. 초반에는 서로 너무 다른 두 사람이 과연 수사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싶어 걱정이 됐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래드쇼가 포와 어울리면서 사회성이라고 할 만한 게 생겼고, 두 사람 사이에 유대감과 우정이 형성되면서 기가 막힌 콤비가 되어 수사를 이끌었다. 의외로 둘이 쿵짝이 잘 맞아서 브래드쇼가 브레인, 포가 현장을 담당해 수사를 착착 해결해 나갔다. 이들의 이야기가 시리즈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다음 책들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이었지만 정말 재미있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읽었다.

"범인은 현장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고 있어. 즉흥적으로 한 게 전혀 없어. 필요한 건 전부 가지고 갔고. 납치 장소나 살해 장소에 물리적인 증거도 남기지 않았는데, 증거 전이가 불가피하고 그 어느 때보다 증거 수집 기술이 발달했다는 걸 감안하면 그건 대단한 일이야." - P51

가능한 단 한 가지 이유는 범인이 포가 사건에 개입하기를 바라지만 너무 뒤처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포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자, 마치 안개를 뚫고 비추는 불빛처럼 자기가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가 훤히 보였다.
이멀레이션 맨은 심판을 피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는 심판을 내리고 있었다.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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