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 - 제3·4회 타임리프 공모전 수상 작품집
해도연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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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연 × 안녕, 아킬레우스 피터는 허가되지 않은 타임루프를 발견하면 루프를 끊고 등록되지 않은 타임루퍼를 회사에 영입하는 일을 하고 있다. 출장을 온 피터는 카페의 마스터가 타임루프에 빠진 타임루퍼라는 걸 설명하고 설득한다. 마스터는 사랑하는 여자와 밤을 보내고 그녀가 사망한 이후에 타임루프에 빠지게 됐다고 하며, 피터에게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한다.
자우 × 심계항진 비 오는 5월 12일에 잠에서 깬 미나가와 히로미는 수업이 없지만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돌아와 과제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잠이 들어 13일 오전 1시에 사망했다. 12일에 깨고 13일에 사망하는 수십 번의 하루를 똑같이 살아가던 히로미 앞에 유학생 겨울이가 나타나 막지 못하는 죽음에 슬퍼한다.
이나경 × 사랑손님과 나
중학생 모연은 누님의 사랑에서 하숙을 시작한 남준의 선생이 영 탐탁지 않다. 자신이 먼저 들어와 지내던 방을 반을 갈라 선생에게 내어준 것부터 시작해 누님이 차린 저녁상을 내가는 일도 영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모연은 못마땅한 마음에 선생의 책상을 뒤지다가 수첩 속에 쓰인 날짜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날짜에 친일을 하는 석정명이 살해되면서 모연은 남준의 선생이 각시탈이라 굳게 믿게 된다.

이나경 × 극히 드문 개들만이
글 쓰는 동아리의 후배 윤이가 '나'에게 게임을 하나 소개해 줬다. 나사 출신이 개발한 '옴니션트'는 가상의 평행우주를 기반으로 한 게임인데, 이 게임으로 종종 글을 쓰기도 한다는 말에 솔깃했다. 게임을 시작한 나는 내가 사는 동네의 골든 리트리버를 키우는 집을 관찰하게 된다. 그러다 졸업이며, 취업 등으로 바빠 한동안 접속을 하지 못했다가 오랜만에 들어간 옴니션트 속에서 골든 리트리버의 특정한 하루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정재환 × 네버 체인지
스포츠 도박이 취미인 석원은 복권방의 주인이 가게를 맡길 정도로 매주 빠짐없이 베팅을 하지만 결과가 썩 좋지는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복권방 주인 대신 가게를 보고 있을 때 맨발에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나타나 어느 팀에 베팅을 해야 할지 말해준다. 석원은 그녀를 미친 여자로 취급했으나 그날 이후부터 매주 이길 팀을 말해주는 걸 보며 승리의 여신이라 확신한다.
유버들 × 시간 보험사
태준은 파견 업체를 통해 '시간 보험사'라는 곳에 왔다. 운전을 하고 짐을 옮기는 등의 간단한 업무라고 생각했던 일이었었는데, 박영남 주임을 따라 아무것도 없는 방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자신이 4개월 후의 미래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박 주임을 따라 돌아다니며 하는 일을 보곤 더욱 믿을 수 없게 되는데...

이경희 ×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
천 년을 살며 꼬리 아홉 개를 얻은 하얀 여우는 산에서 목숨을 끊으려는 남자를 구해준다. 그와의 만남을 계기로 어느덧 부부의 연을 맺고 행복하게 살아온 그들 앞에 전란이 발발했다. 여우 아내가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의병으로 나가 싸우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남편을 잃고 슬퍼하는 여우 아내 앞에 검은 여우가 나타나 과거로 시간을 돌려주는 대신 꼬리를 하나 달라고 한다.
위래 × 쿠소게 마니아
1시 24분 45초,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학교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교실에 있던 소년은 몇 번이고 학교를 빠져나가 살아남고자 하지만, 아무리 해도 벗어날 수 없어 죽음을 맞이하고서 다시 추락 시점으로 되돌아온다.
남유하 × 뒤로 가는 사람들
아내를 죽이고서 밖으로 나온 남자는 갑자기 사람들이 뒤로 걷기 시작하는 걸 본다. 심지어 자전거마저 거꾸로 가고 있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싶어 집으로 돌아오자, 자신의 손으로 죽인 아내가 멀쩡히 살아남아 남자를 걱정스레 맞아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란다. 이후 남자는 몇 번이고 뒤로 가는 현상, 일명 '리와인드'가 일어나는 걸 겪으며 규칙을 알아내고자 한다.




타임리프,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앤솔러지 작품집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는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재미를 느끼게 했다. 현대의 이야기가 있던가 하면, 표제작과 같은 시대극이 있었고, 더러는 스릴러 장르의 재미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있었다.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는 <시간 보험사>였다. 주인공 태준은 파견 업체의 알선으로 '시간 보험사'에 일을 하러 갔는데 갑자기 4개월 후의 미래에 와 있었다. 아주 먼 미래가 아니라서 현재와 거의 다를 게 없긴 했으나 문제는 시간 보험사의 박 주임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며 태준에게 망을 보라고 시키거나 뭔가를 찾으라는 일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태준은 도망치고 싶어도 돌아갈 방법을 몰랐고, 경찰에게 신고를 하자니 4개월 전의 과거에서 왔다는 말부터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다.
이후 태준은 무사히 현재로 돌아왔고 다시는 시간 보험사에 일을 하러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겐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 이후 소설은 결말에서 놀라운 장면을 보여주며 소름 돋게 만들었다. 이토록 짧은 소설에서 기승전결, 반전까지 확실해서 확실히 각인시켰다.
<뒤로 가는 사람들> 또한 <시간 보험사>와 같이 스릴러의 재미를 느끼게 했다. 아내를 죽인 남편이 등장해 뒤로 가는 '리와인드'를 겪으며 아내를 죽인 날에서 자꾸만 날짜를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을 했다. 과거로 향해 가는 남자가 이제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게 했는데, 이 소설 역시 반전을 보여주며 전율을 느끼게 했다. 그러면서 결말은 조금 씁쓸함을 남겼다.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변주 <사랑손님과 나>는 일제 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중학생 모연이 사랑손님을 신출귀몰 애국지사 각시탈로 오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 소설에 타임루프 소재가 어떻게 활용될까 궁금했는데, 역시나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면서 시대적 배경의 안타까움을 더해 여운을 남겼다.

시간 여행이라는 특정 주제로 여러 작가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채롭게 즐겼다.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시간 여행이기에 더욱 흠뻑 빠져 읽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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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매일 그녀와 조금씩 다른 대화를 했고, 그녀의 반응도 매일 조금씩 달랐어. 결국, 매일 다른 사람이었지. 그리고 난 지금까지 수많은 그녀들이 죽어 가게 내버려 뒀고."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무슨 대화를 했든지, 오늘 밤 세상을 떠나는 게 그녀의 운명이에요. 당신은 그저 조금이라도 그녀를 붙잡고 싶었던 것뿐이죠." 해도연 <안녕, 아킬레우스> - P29

"시대를 거슬러 옮겨 다닐 수 있다면 여기서 복잡하게 이러실 것 없이 소위 을사년의 오적이라는 자들을 미리 처단하면 될 일 아닙니까? 아예 나라를 빼앗기기 전에 손을 쓰시면 되잖아요?"
"그랬다간 미래가 바뀌잖나."
"아무렴요. 좋게 바뀌겠지요."
"그걸 장담할 수 있나? 또 다른 역적이 등장해 나라를 팔아치우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느냔 말일세. 어쩌면 백 년이 지나도 해방되지 못할 가능성이 정녕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나경 <사랑손님과 나>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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