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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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은 종교인이 되기 위해 신학 대학에 다니다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신앙을 잃고 에드워즈 대학에 편입해 왔다. 그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자신의 과거는 물론이고 가족에 대해서까지 지어내 거짓말을 했다.
피비는 여태껏 신앙 없이 살았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 후에 피비는 엄마를 따라 미국에 왔고, 이후 모녀를 따라온 아빠가 교회의 목사가 되었어도 그녀는 신을 믿지 않았다. 그러다 엄마가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피비는 자기 탓을 하며 방탕한 삶을 살다가 윌을 만났다.
신앙을 버린 윌과 신앙이 없던 피비는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어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런 그들 앞에 존 릴이라는 남자가 나타났다. 존은 자신이 겪은 남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종교를 만들어내 사람들을 꾀어냈다. 그들 중에는 피비도 있었다.



소설의 시작은 모든 것이 끝난 이후 이미 일어난 사건을 상상하는 윌이었다. 그 후 존 릴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내는 장면이 이어졌다. 존은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서울로 밀항시키는 단체에서 일을 하다가 북한 요원들에게 납치당해 강제 노동 수용소에 처박혔다. 그곳에서 존은 두려움에 떨기만 한 게 아니라 신뢰할 수 없는 폭군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이디어를 빛냈다. 자신도 저렇게 될 수 있으리라는, 당연히 되고도 남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타인의 약한 면을 간파하고 도움의 손길인 척 내밀며 자신이 원하는 걸 손에 쥐려는 나쁜 마음이 존 릴의 정체성이었다.

존 릴이 사이비 종교를 구상하고 있을 때 윌과 피비는 대학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지만 결핍이 있다는 건 같았다.
가정에서 일어난 여러 불행으로 인해 스스로 종교에 빠져 신을 믿으며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던 윌이었다. 하지만 신은 윌을 거두지 않으려던 모양이었는지 시련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결국 윌은 자신이 선택했던 종교를 자신의 의지로 버리게 된다.
피비는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재능이 없다고 여겨 그만두었다. 그러다 어느 음악회에 엄마와 함께 참석한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나는 바람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당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사람이 피비였기에 그녀는 자신이 엄마를 죽인 거라 여기며 되는 대로 살기 시작했다.
삶에 시련이 닥쳤을 때 헤쳐나가는 방식 자체가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달랐기 때문인지 피비와 윌은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두 사람이 각자 따로 존재했을 때에는 불안정해 보였는데, 함께 있으니 서로에게 의지하며 균형을 맞춘 덕분에 나름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서로에게도 툭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결핍과 불안으로 인해 둘의 사이는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윌은 가난을 숨기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쁘게 사는 삶으로 인해, 그리고 피비는 윌의 존재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가족의 부재 때문이었다.
그러다 피비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존 릴을 만나 그가 만든 사이비 종교 모임 '제자'에 참석하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지나버리고 말았다. 과거에 신을 믿으며 조금이나마 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윌이 어느덧 종교에 깊이 빠져버린 피비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게 당연했다. 특히나 제자 모임은 일반적인 기독교가 아니라 사이비가 분명했기 때문에 윌은 피비를 말려야만 했다. 그러나 이해의 간극은 너무나 커져버린 뒤였기에 윌은 피비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끝을 맞이했다.
이 과정을 보며 솔직히 두 사람 모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자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면서도 종교에 심취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던 피비는 존의 뱀 같은 혓바닥에 넘어가고 말았다. 똑똑하고 부유한 피비가 존의 허무맹랑한 소리에 그토록 쉽게 넘어가버린 건 그만큼 결핍이 컸다는 의미겠지만 좀처럼 믿기 어렵긴 했다. 그리고 윌은 신앙을 가졌다가 버린 입장에서 피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었지만, 연인 사이의 질투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러 피비가 스스로 떠나게 만들었다. 둘 다 서로를 사랑했던 만큼 이해도 깊었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아무래도 내가 종교를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피비와 윌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두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어떤 결핍이나 삶의 시련을 겪어도 타인이나 무언가에 의지하기보다는 좀 부족할지라도 나 자신만을 믿는 내 성향 탓인지도 모르겠다.
종교를 가졌다가 버린 적이 있는 권오경 작가의 실제 경험담이 어느 정도 담겨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문득 사람에게 종교, 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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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 지금도 나는 하나님이 실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지어낸 존재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분이 정말로 있다면,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내려달라고 빌었을 거야. - P304

by. 피비
소원이 있어. 나를 놓지 말아 줘. 나는 생각했어요. 윌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떠돌아다녔으니까요. 그가 나를 이 땅에 붙들어줬어요. 밤새도록 내게 붙어서. - P130

by. 윌
나는 하나님이 내게 계시를 내려주기를 기다렸어. 하지만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은 그런 게 아닌 것 같아.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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