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보이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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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워싱턴 외곽의 작은 마을. 그곳 초등학교에 가나 출신 외교관의 아들 오세이가 전학을 온다. 백인 아이들만 가득한 학교에 나타난 흑인 소년은 단번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버지의 잦은 전임으로 인해 세계 여러 곳곳은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도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던 오는 그런 시선이 익숙하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불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백인 사이의 흑인이라는 뚜렷한 점으로 인해 오는 되도록이면 조용하고 무탈한 하루를 보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오에게 금발의 백인 소녀 디가 다가왔다. 디는 전학생에게 학교 안내를 해주라는 선생님의 말씀으로 인해 오에게 다가온 것이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오는 그녀는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걸 느낀다. 심지어 디는 오를 멋지고 좋은 사람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로 인해 두 사람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금세 가까워졌다.
이들을 지켜보는 많은 학생들 중 학교의 권력자라 할 수 있는 이언의 심사가 뒤틀린다. 그는 디와 오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디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자신의 여자 친구인 미미에게 어떤 명령을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인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뉴 보이>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한 작품인 <오셀로>를 바탕에 둔 작품이다. 무어인 장군 오셀로가 원로의 딸 데스데모나와 결혼한 이후, 악인 이아고의 뱀 같은 혀에 속아 넘어가 아내를 죽이고 마는 비극이다.
<뉴 보이>는 인종 차별이 심했던 70년대 미국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6학년생으로 주인공들의 연령대를 낮췄다. 사춘기에 막 접어들 무렵의 아이들이라 애정 관계에 예민할 수밖에 없고, 성인처럼 위선을 떨기보다는 보이는 그대로 악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원작의 의도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6학년이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전학 온 오는 흑인으로 차별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오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대하는 태도에서 뚜렷하게 차별하는 선생님이 있기도 했고, 그나마 속내를 숨기는 선생님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또래 아이들이 보이는 차별이나 동물원 원숭이를 보는 것처럼 노골적인 적개심이 오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오는 한 달만 있으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가서 새로이 적응을 시작하면 괜찮을 거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학교 안내를 맡은 디 덕분에 오는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괜찮은 하루를 보내게 됐다. 인종 차별을 전혀 하지 않는, 그저 피부가 희고 까맣다는 것뿐이지 같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디는 정말 좋은 아이였다. 거기다 오의 괜찮은 면을 발견할 줄 알았고 학교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다. 태생이 선량한 디를 오늘 만났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건 당연했다. 그리고 디 또한 오의 좋은 면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그에게 푹 빠져들었다.

이렇게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무난히 새 학교에 적응을 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학교의 권력자인 이언으로 인해 불행의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언은 아이들을 괴롭히며 군림하기를 좋아하던, 그야말로 못된 아이였는데, 오가 디와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운동장에서 아이들끼리 놀며 게임을 할 때 월등한 실력을 보여줘서 질투의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모든 면에서 자신이 주목을 받아야 하고 우두머리가 되어 아이들을 지휘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 이언 입장에서 오는 굴러온 돌이었을 터였다. 그래서 그를 꺾어버리기 위해 계략을 짜내기 시작했다. 자신과 사귀는 미미를 이용했고,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스타이자 선한 캐스퍼를 디와 엮어 오의 질투를 사기로 말이다.
미미는 이언과 사귀기 시작했을 땐 좋았지만, 시간이 점점 흘러 현재 오가 전학 온 날이 되었을 때는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헤어질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언이 디의 물건이든 편지든 가져오라는 말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미미는 디가 떨어뜨린 딸기 필통을 이언에게 줬는데, 하필이면 그 필통은 오가 디에게 준 것이라는 게 문제가 됐다.

그저 필통이라는 작은 것에서 시작됐지만, 질투의 위력은 너무나 컸다. 특히나 백인 아이들 사이에 홀로 존재하는 흑인 아이에게 그 위력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불씨가 되고 말았다. 오의 마음에 생긴 불신의 씨앗은 이언이 뿌리고 물을 주며 키운 결과 주변의 여러 아이들에게 너무나 큰 비극을 불러일으켰다. 순수하게 오를 좋아했던 디는 몸은 물론이고 마음에까지 큰 상처를 안게 됐다. 캐스퍼는 이언으로 인해 선량한 모범생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말았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크게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미미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비극의 시작이라는 걸 느낀 오는 끔찍한 선택을 하고 만다.
그야말로 비극 중의 비극이었다. 주인공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고 씁쓸한 비극이었다. 그로 인해 이언의 순수한 악의가 몸서리쳐지게 지독하게 느껴졌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선명하게 되새겨졌다. 주제가 분명히 드러났고 재미도 있었기에 현대적으로 잘 각색이 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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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모든 게 정말 멋졌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달라졌어. 마치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누가 그 애한테 나에 관한 어떤 얘기를 한 것처럼." - P202

오늘, 오는 또 한 번, 자기를 응시하는 백인 아이들로 가득한 운동장을 마주하고 있었다. 자기를 이리저리 재어 보는 또 다른 남자애들의 무리. 전 세계에서 똑같은 음높이로 울리는 또 다른 종, 줄의 맨 앞에 서서 그를 불안하게 쳐다보는 또 다른 선생님. 이전에도 이 모든 것들을 겪었고 모두 익숙했다. 그 여자애만 빼면. - P46.47

이언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말에 담긴 단순한 힘이 흑인 소년을 차가운 동상으로 바꿔 놓았고, 백인 소녀는 소년에게서 멀어졌지만 자신의 아찔한 감정에만 휩쓸려서 남자 친구의 변화를 부러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이언은 그 상처가 칼처럼 소녀를 파고들기를 기다렸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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