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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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제과에 다니고 있는 정다해는 공채 사원이 아니라 비공채로 입사하게 된 특이한 케이스이다. 회사 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이라 애매했지만, 마침 같은 시기에 비공채로 입사한 은상 언니, 지송이와 친해진 덕분에 힘든 회사도 묵묵히 다닐 수 있다.
그녀는 아직 학자금 대출이 남았고, 월세 원룸에서 생활하며 월급날 직전에는 텅 빈 통장 잔고로 인해 허덕이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고향 아산에서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엄마는 노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나름 알아주는 제과 회사지만 월급은 생각보다 짜서 허무하지만, 그래도 매달 월급이 나오는 회사에 다니는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든다. 다해와 마찬가지로 은상 언니와 지송이의 처지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러던 중, 평소에도 돈을 좋아하는 티를 팍팍 냈었던 은상 언니가 볼 때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뭔가 이상했다. 알고 보니 언니는 코인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집을 옮겨야 하는 처지에 있던 다해가 언니의 꼬드김에 넘어가 이더리움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듯한 흙수저 여자 셋의 회사 생활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어느 정도는 그게 맞긴 했다. 함께 외근을 나갈 때마다 사고를 일으키는 팀장이라든지, 월급이 짜디짠 회사라든지, 점심시간의 짧은 행복 같은 것들이 앞부분을 장식했다.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야기라 꾸며낸 소설임에도 진짜처럼 와닿았다. 그래서인지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와 몰래 상사 욕을 하는 것처럼 키득키득 웃으며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해, 은상, 지송이의 사생활에 관한 부분이 드러나면서 짠한 마음과 일정 부분 공감대를 또다시 형성했다. 버는 족족 나가는 월세와 생활비, 거기에 월급날이 다가오면 통장이 아니라 텅장이 되는 현실은 내 과거의 어떤 시기를 떠오르게 했다. 남들은 다 잘 사는 것 같고, 여유롭게만 보이는데 왜 나만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는지 자괴감이 드는 현실마저 소설 속 세 인물들과 닮아 있었다. 어마어마한 부자가 못 되는 건 진작 알고 있으니 조금은 여유롭게, 적어도 매일 돈 걱정을 하면서 살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다해와 은상, 지송은 그렇게 한줄기의 햇살도 비치지 않는 삶이 계속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소설 속 표현을 인용하자면 어떤 포털이 열렸다. 코인이라는 낯설고도 두려운 포털이었다. 은상이 먼저 이더리움에 탑승해 한창 돈을 모았을 때, 다해가 마침 월세 계약 만기로 집을 보러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은상은 다해를 앞에 앉혀두고 아이패드를 통해 이더리움, 가상화폐 등등을 이야기했고, 나중엔 대출금을 그 자리에서 전부 상환하는 걸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하는데 귀가 팔랑거리지 않을 수 없었을 터였다. 그래야 소설이 진행될 테고, 재미가 더해지니 말이다.
반면에 나였더라면 아무리 그래도 안 넘어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간이 작아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투자를 한다는 게 좀처럼 신뢰가 가질 않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변액 보험에 가입했다가 본전도 못 찾은 경험이 있어서 이후로는 돈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렇게 다해까지 이더리움에 탑승해 핸드폰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세 사람 중 막내인 지송이는 끝까지 안 하겠다고 버팅겼다. 언니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서 코인 얘기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지송이 역시 앞날이 캄캄하기는 마찬가지라 결국 코인 열차에 탑승한다.
회사에서 직급조차 없는 여자 셋의 코인 열차 탑승 이야기는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 몇몇이 코인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런지 소설임에도 몰입하게 됐고, 금액이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마치 내가 코인을 하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더 오를 때까지 기다릴까, 아니면 지금 팔아야 할까 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다른 사람이 코인을 하는 이야기가 이런 즐거움을 줄 줄은 몰랐다. 과연 그들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 다행히 평범한 직장인들에겐 판타지와 같은 결말로 끝이 나 대리만족을 주었다. 내가 코인으로 돈을 번 건 아니지만 우리의 주인공들이 이렇게라도 대신 벌어서 기쁘기까지 했다.

코인에 대해 하나도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던 소설이었다. 추리 소설이 아닌데도 긴장하며 읽기는 오랜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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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푼 두 푼 모은 전 재산을 가상화폐에 걸어두고 퇴사를 꿈꾸며 점쟁이에게 미래를 물어보려는 내 인생…… 대체 실체가 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 스스로가 너무 황당해서 쓴웃음이 났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 P129

그냥, 인생 자체가 그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 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했지만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땐 한 땀, 뒤로 돌아갈 땐 번 땀 이어서 그래도 제자리걸음만은 아닌 그런 느낌으로. 그렇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서서히…… 차츰차츰…… 매일매일…… 하루하루…… 그뿐이었다. 대체 무엇을 감히 더 바랄 수 있을까? - P98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러니까 몇천만 원 가량의 숫자가 내 휴대폰에 찍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이지 언니의 표현대로라면 ‘약간 부자‘가 된 것만 같았다. 가상 지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게 내 은행 잔고처럼 여겨졌으니까.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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