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2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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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모자수는 형 노아처럼 학교에 다니지만 공부에는 영 흥미가 없다. 그는 길에서 당과를 파는 엄마 선자와 할머니를 놀리거나 약한 친구 하루키를 괴롭히는 일본인 아이들을 혼내주기 일쑤고,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한다. 그날도 엄마와 할머니의 가게에 들렀다가 근처 다른 가게에서 양말을 파는 여자애를 희롱하는 손님에게 본때를 보여줬다가 이가 두 개나 부러지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한다.
다행히 모자수와 그의 가족들을 괜찮게 보고 있던 파친코장 주인 고로가 중재를 한 덕분에 모자수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고로는 모자수에게 적성에 맞지 않는 학교는 그만두고 자신의 파친코장에서 일을 하면서 가족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라고 제안한다.

학교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한 노아는 드디어 와세다대학에 합격했다. 일본 최고 대학 중 하나에 합격했다는 기쁨도 잠시, 이내 등록금과 도쿄에서 지낼 집, 생활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선자와 경희, 할머니 양진 역시 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픈 요셉으로 인해 드는 약 값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노아는 모자수가 일해서 버는 돈은 쓰지 않겠다고 하며, 자신이 학교생활과 일을 함께 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했다.
그러다 한수가 선자와 노아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한수는 노아의 대학 합격을 축하하며, 자신이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등록금을 지불했고 도쿄에서 생활할 집까지 마련해두었다고 했다. 노아가 없는 자리에서 선자는 빌린 걸로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한수는 그 애는 자신의 아들이기도 하다며 아버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말한다.



1권에서 선자를 중심으로 한 고된 이야기가 펼쳐졌다면, 2권은 그녀의 자식인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모자수가 낳은 아들 솔로몬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물론 선자는 이 장대한 이야기의 핵심 인물이니만큼 종종 등장해 중심을 잡아주었다.

선자가 낳은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는 성격이나 인생에 대한 주관 등 모든 게 달랐다. 일본 최고의 대학에 들어간 노아와 학교를 그만두고 파친코장에서 일하게 된 모자수를 얼핏 보면 각각 이삭과 한수의 피를 이어받은 것처럼 느껴졌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야쿠자라고도 불리며 몰라도 될 일로 돈을 버는 한수는 공부에 매진해 뜻을 이루고자 하는 노아를 대견스럽게 여겼다. 당연히 그 사실을 티 낼 수가 없어 대외적으로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나마 노아를 곁에 둘 수 있었다.
노아와는 달리 모자수는 굴하지 않는 조선인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꺾이지 않는 의지와 강인한 성격이 그를 세상으로 이끌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남자의 삶에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자못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대학에서 돈 걱정 없이 마음껏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노아는 한 달에 한 번씩 한수를 만나 식사를 했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노아가 만나던 여자친구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 누가 봐도 노아는 한수의 자식이라고 한 말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노아는 그 길로 오사카에 달려가 선자에게 사실을 확인했고, 이후 대학을 그만두곤 모두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 장면에서 입을 함부로 놀린 여자친구의 경솔함에 너무나 화가 났다. 노아는 여태껏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로 인해 괴로워하던 10대를 보냈지만, 순교자가 된 아버지 이삭의 정직함과 존경스러움, 그리고 가족들의 헌신으로 그나마 버틸 수가 있었다. 태생적으로 유약한 성정이라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갈피를 잡기 어려워하던 노아를 잘 알지 못하던 여자친구가 불을 붙여버린 것이었다.
그로 인해 선자는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됐다. 매달 돈을 보내는 걸로 살아있다고만 짐작할 뿐이었다. 그렇게 잠적한 노아가 신분을 감추고 파친코장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게 된 건 인생의 아이러니함이었다.

노아와는 달리 굳센 성격의 모자수는 파친코장에서 열심히 일을 해 주임에서 지배인으로 승진했고, 나중엔 요코하마에 자신의 파친코장을 개업하기까지 했다. 그 사이에 모자수는 친구 하루키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의 직원 유미와 가까워져 결혼까지 하게 됐다. 그리고 몇 번의 유산 끝에 아들 솔로몬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지만, 아이가 3살이 되었을 때 교통사고로 유미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장 행복하고 즐거울 때, 부족함이 없을 때 불현듯 찾아오는 불행으로 인해 인생은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일본에 사는 조선인으로 온갖 역경을 겪다가 드디어 이제 괜찮은 삶을 살아가나 싶을 때 찾아온 불행은 사람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수 덕분에 16년 만에 노아를 찾아 마주하게 된 선자 역시 모자수와 비슷한 불행을 겪게 되었다. 그 한 문장이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느낌이 들게 했다. 내 자식도 아닌 노아가 그렇게 됐다는 걸 알고 너무 큰 상심을 느꼈는데, 선자는 오죽했을까 싶다.
그렇지만 두 사람에게는 자식이 있어서 살아가야만 했다. 선자에게는 모자수가, 모자수에게는 솔로몬이 있었다. 삶은 그렇게 누군가로 인해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이후 성인이 된 솔로몬의 이야기가 이어지며 재일조선인, 일명 자이니치로 불리는 삶이 어떤지 보여줬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한 번도 고향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남한과 북한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삶이 정체성의 근간을 계속해서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게 어떤 느낌일지 평범한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뿌리인 선자는 어느덧 할머니 세대가 되어 바뀐 시대와 여성을 바라보게 되었다. 여자는 고생해야 한다는 말만 듣고 자란 그녀가 만약 다른 시대에 태어나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양진과 훈이에서 시작되어 선자로, 그리고 노아와 모자수,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이 장엄한 이야기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희생과 역경의 시대를 살아간 조선인들의 삶을 말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일본에서 선자, 모자수, 솔로몬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니 절로 울컥하고 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그래도,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게 한다.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삶이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은 게 큰 행운이다. 소설을 다 읽었으니 조만간 드라마도 봐야겠다.


모자수는 인생이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믿었다. 다이얼을 돌려서 조정할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생긴 불확실성 또한 기대한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 P80

노아는 아키코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에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누구와 함께 있어도 자신이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무슨 의미이든, 노아는 그저 자기 자신으로 있고 싶었다. 때로는 자신을 아예 잊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 P104

모세와 유미 같은 사람들은 조선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조선인들 이야기가 항상 들려오지만 어떻게 보면 조선인들 모두가 마음속에서 영원히 고국을 잃어버렸다. - P86

선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한수도, 심지어 이삭도 아니었다. 선자가 꿈에서 다시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선자는 그렇게 여자가 됐다. 한수와 이삭과 노아가 없었다면 이 땅으로 이어지는 순례의 길도 시작되지 않았으리라. 이 아줌마의 삶에도 평범한 일상 너머에 반짝이는 아름다움과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몰라준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 P36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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