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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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해리 홀레는 이제 더 이상 없다. 경찰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그는 다시 수사관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카트리네 브라트가 신임 반장이 된 강력반의 말단 수사관으로 말이다. 심지어 해리는 트룰스 베른트센과 거의 같은 급의 취급을 받고 있었다.
해리가 사회적으로만 이런 불행을 겪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시 술을 버릇처럼 들이켜고 종종 기억을 잃을 정도가 됐다. 두 달 반 전, 라켈의 집을 나와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둘이 아직은 이혼이 아닌 별거를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되돌리기엔 요원해 보였다.

이런 와중에 해리가 경찰이 되고 처음으로 구속시킨 스베인 핀네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지난 뱀파이어 사건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 자신을 비롯해 가족들까지 위협하던 핀네로 인해 해리는 그의 행적을 쫓으며 일어나는 사건마다 그에게 혐의를 두지만, 카트리네는 해리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카트리네가 자신을 찾았다기에 그녀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라켈의 소식을 듣는다. 얼마 전까지 자신과 함께 살던 그 집 거실에서 라켈이 칼에 찔려 사망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지난 해리 홀레 시리즈인 <목마름>까지는 괜찮았다. 라켈이 갑자기 코마에 빠져서 해리가 또 불행해지는 건가 했지만, 그녀는 금세 회복되어 다시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해리는 당연히 뱀파이어 사건의 범인을 잡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는 시작부터 불행한 해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라켈과 헤어져 혼자 살던 아파트로 돌아왔고 말단 경찰로 일하고 있었으며, 다시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종종 기억을 잃어버리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다시 불행한 해리로 돌아오게 됐는지는 소설 후반부에 밝혀지긴 했지만, 읽는 동안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조금은 답답함을 느꼈다.

이런 와중에 스베인 핀네가 출소해 다시금 여자를 강간하고 임신시키며 중절 수술을 받으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고 다녔다. 그래서 해리는 핀네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라켈이 살해됐다고 하니 당연히 그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라켈과 별거를 시작한 뒤에 그녀의 집 근처에 설치한 야생동물 카메라를 찾아보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메모리카드가 사라져 있었다.
유부녀가 집에서 살해됐고 사라진 귀중품이 없으니 첫 번째 용의자로 떠오른 건 당연히 아직까지는 법적인 남편인 해리였다. 라켈이 살해됐을 거라고 추정되는 시각에 해리는 지난 사건 때문에 인수했다가 팔아넘긴 바에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절친인 외위스테인이 택시 운전사를 그만두고 바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그의 알리바이를 입증했다. 거기다 해리는 그날 술에 너무 많이 취해서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가 되는 바람에 육아 휴직 중인 비에른 홀름이 그를 집에 데려다주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해리는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자꾸만 떠오른다. 술에 취해 기억을 잃긴 했지만, 라켈의 집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나 피가 묻은 청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술로 인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라켈의 사건과 어떻게든 연관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설마 해리가 라켈을 살해했을 거라고는 절대 믿을 수가 없었다. 시리즈가 10편 넘게 이어지는 동안 해리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술에 절어지내며 조금은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경찰이긴 했지만, 해리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어도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그런 해리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라켈이 집에서 쫓아냈다고 해서 죽일 마음을 먹을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심지어 술에 취했더라도 말이다. 누군가가 파놓은 함정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가 빨리 범인을 잡아 처단하길 바랐다.

아내가 살해됐기 때문에 해리는 당연히 수사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해리는 살인범을 제 손으로 잡아야만 했다. 그래서 돌아온 카야와 카트리네와 결혼해 아기를 돌보느라 휴직 중인 비에른, 그리고 때때로 원나잇을 하기도 했던 법의학연구소의 알렉산드라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해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여럿 등장했다. 혐의가 가장 짙은 사람은 당연히 스베인 핀네였고, 라켈의 상사이자 전직 특수작전부대 중령 로아르 보르 또한 수상한 부분이 있었다. 거기다 라켈이 없었더라면 해리와 이어졌을지도 모를 카야까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다 소설 후반에 라켈이 해리를 내쫓은 이유가 밝혀지면서 충격을 줬고, 이후 그동안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이 범인임이 드러났다. 사랑하는 여자를 죽인 범인을 찾아냈음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그를 처단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해리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인간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선택을 했다. 그것도 그를 오랫동안 찾아 헤매느라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는 이에게 복수의 칼을 쥐여주었다. 소설 후반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여러 번 받았다. 충격의 연속이라 뒤통수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다.
진짜 범인의 선택 또한 뭔가 안타까운 구석이 있었고, 그 선택과 해리가 숨긴 모든 걸 모를 한 여자까지 가엽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인생의 발걸음을 어디로 옮길지 몰라 선택의 기로에 선 해리는 언제나처럼 불쌍한 우리의 주인공이었다.

정말이지 요 네스뵈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데 최고인 작가다. 행복한 해리를 보는 동안 마음이 놓였는데, 다시금 불행에 빠뜨렸다. 그것도 사랑하는 여자가 살해당하고 범인의 정체로 충격을 주면서 말이다. 해리가 어디까지 갈지 정말 불안하다.
다음 해리 홀레 시리즈는 <Killing Moon>이라는 제목인데 2023년에 출판 예정이다. 아마도 노르웨이에서 출판하고 나서 우리나라에 들어오기까지는 좀 걸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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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수사야. 그는 속으로 말했다. 여긴 수사 현장이야. 난 지금 꿈꾸고 있지만 자면서도 수사할 수 있어. 제대로 해야 하고 계속 해나가야 해. 그러니 깨어나지 않을 거야. 깨지만 않으면 현실이 아니야. - P90

행복한 순간에 이미 다시는 이렇게 행복할 수 없고 지금 가진 것이 사라질 거라는 지독한 진실을 통찰하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빼앗기는 고통과 상실의 슬픔을 미리부터 걱정하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을 인식하는 그 능력을 저주한다. - P80

"이건 증오예요. 이건 증오와 슬픔이 지독하게 뒤섞인 거예요."
"그 말이 맞아." 해리가 말했다. 그는 입에서 담배를 빼서 담뱃갑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 내가 틀렸어. 난 아직 모든 것을 잃지 않았어. 내겐 증오가 남았어." - P188

"우리는 복수를 해. 합리적이야. 그런데 우린 그게 합당한지 따질 것도 없이 그저 기분이 좋다는 것만 알아. 지금 자네 기분이 그렇지 않나, 홀레? 자네는 자네의 고통을 다른 누군가의 고통으로 만드는 거야. 자네의 고통에 책임이 있다고 스스로 정당화할 수 있는 누군가."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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