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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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불치병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평온한 죽음을 제공하고자 안락사 합법 법안이 통과되어 '센터'가 설립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 센터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24번째로 우리나라에도 들어섰다.
센터는 죽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입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입소하려면 먼저 큰 비용이 필요했다. 그리고 입소 전에 센터 의사와의 면담을 통해 입소 여부가 결정되었고, 입소 후에는 그곳에서 한 달이라는 필수 기간을 보낸 뒤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다. 더 살아보고 싶은 사람은 센터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고, 누군가는 지옥 같았던 세상으로 나갈 수도 있었으며, 죽음을 선택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날짜에 임종실에서 약을 먹고 편안히 세상을 떠날 수 있었다.

서른이 가까운 나이의 이서우는 중학생 때부터 자신의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어느 순간 이후로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 엄마와는 늘 방문을 사이에 두고 문자와 말로 대화를 했다. 서우는 세상 모든 게 두려웠다.
그런 서우가 우리나라에도 센터가 설립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방 밖으로 나온 적이 없어 사회생활을 해보지 못한 그에게 입소 비용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재택 아르바이트를 해보려고 해도 비용을 모으기 어려웠다. 결국 서우는 엄마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지만, 엄마는 아들이 죽기 위해 떠나겠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러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엄마는 서우에게 센터에서 6개월만 살아보라는 약속을 받아내고 입소 준비를 도와준다.




소설은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돕는 가상의 기관인 센터를 소재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주인공 이서우의 시점으로 흘러가면서 그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습에서 센터 입소 후에는 서로에게 깊이 공감하는 마음을 가진 여러 사람들을 만나 가까워지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서우의 상황이나 센터에 입소한 많은 사람들에게 심적으로는 공감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고, 죽어가는 상황이나 내 몸에 가해질 고통이 두렵기도 하고, 또 개인적인 일이 있기도 해서 자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다만 죽고 싶을 정도로 삶이 괴로운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현재,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줄 이가 아무도 없는 상황으로 인해 사는 것보다는 죽는 걸 택하는 이들도 있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이다.
서우가 센터에 들어간 이후 만난 룸메이트 김태한을 비롯해 김태한과 어울리던 멤버들인 한 여사님과 양지, 손형과 작가님 등을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중엔 서우의 이야기까지 밝혀지면서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기 마련인데, 그 삶이 얼핏 쉬워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어려운 사람도 있다. 삶을 포기할 만큼 절망적인 사건이 일어난 경우도 있지만, 누군가는 사소하다 여길 수 있는 문제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갖게 하기도 한다. 모든 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일이라 그 누구도 삶과 죽음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서우가 센터에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일어나는 소소한 매일을 읽으면서 문득 눈물이 쏟아질 뻔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이들은 누군가의 포옹으로 인해 삶의 온기를 조금이나마 느꼈다. 친구가 된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을 때, 서우가 가장 전망 좋은 방을 배정받아 창밖의 풍경을 볼 때, 아름다운 벚꽃길과 면회를 온 엄마의 뒷모습 같은 사소하지만 소중한 모든 게 아직은 이 삶을 놓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아 괜스레 슬퍼졌다. 죽음에 대한 시선은 언제나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누군가를 뜻하기 때문이었다. 삶에 대한 희망을 조금이나마 느꼈더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었더라면 선택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에 짙은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렇게 공감 아닌 공감을 하면서 책을 읽는 동안 서우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궁금했다. 센터에서 생활하게 된 그에게 바깥세상에서와는 다른 희망이 점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사건이 일어나며 감정적으로 힘들어질 때가 있었고 어떤 선택도 하게 됐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참 다행이다 싶은 결말이었다. 비록 그 결말을 위해 앞서 일어났던 선택이 조금은 작위적인 느낌이 들긴 했어도 소설을 읽는 내내 간절히 바랐던 부분이라 안도했다.

완벽하게 마음에 쏙 든 내용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이 책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기억하고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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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고통의 정도‘가 아니었다. 똑같이 온몸이 마비된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삶을 원했고, 누군가는 죽음을 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삶과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였다. - P21

누군가 나를 안으면 숨을 참고, 또 안으면 또 숨을 참고, 숨을 참고, 참고, 참고, 그러다 어느 순간, 숨이 쉬어졌다. 사람이 다가와 옷을 바스락거리는 소리. 입고 있는 옷과 체형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감촉. 그러나 비슷한 체온. 살아 있는 사람들. 누군가는 울면서 나를 안았고, 누군가는 수줍게 웃으며 안았고, 누군가는 얕게 품었고, 누군가는 깊고 오래 품었다. 나를 끌어안았던 누군가가 떠난 자리에 36.5도보다 낮은 공기가 스며들기 전에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와 온기를 채워주었다. 그렇게 여러 개의 체온 안에서 고요하게 머물렀다. - P151.152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꽤 소중하지. 필요한 거고.
그렇다고 해서 삶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삶이 더 간절한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래서 더 아픈 건지도 몰라. 삶이, 진짜 살아 있는 삶이 너무나 간절해서.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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