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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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인 '나'는 마감을 앞두고 글이 써지질 않아 시간만 보내고 있다.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기엔 아까워서 <천일야화>를 읽게 되는데, 문득 16년 전 학창 시절에 헌책방에서 발견한 사야마 쇼이치의 <열대>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엔 그저 묘한 이야기라 여겼던 책은 점점 흥미를 이끌었고 아껴서 읽을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책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자기 전에 분명 머리맡에 뒀던 책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 책을 다시 구하려고 해도 본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여태까지 <열대>의 결말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에 다니던 직장의 친구가 '침묵 독서회'라는 곳에 함께 가자며 초대를 했다. 여러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여 각자 그룹을 이뤄 가지고 온 책에 대한 수수께끼를 이야기하는 그 모임에서 나는 <열대>를 가지고 있는 한 여자를 보게 된다. 곧장 그 그룹에 참석하게 된 나는 여자와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열대>를 끝까지 읽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기이한 말을 듣는다. 그러면서 그녀는 <열대>를 읽은 사람들의 학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책 제목과 같은 <열대>라는 책을 둘러싸고 시작된 기이한 이야기였다. 마침 서막을 장식한 소설가의 이름이 모리미였다는 게 묘한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열대>를 끝까지 읽은 사람이 없다는 점 또한 기묘했다.

소설가 모리미에서 시작된 <열대>를 향한 갈증은 시라이시라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녀는 삼촌의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같은 건물에 다니는 직장인 이케우치를 알게 됐고, 그를 통해 <열대>를 탐구하는 학파에 초대받았다. 그 학파에서 <열대>의 작가 사야마 쇼이치를 알았던 지요 씨를 만나 책의 비밀에 한층 가까워지지만, 지요 씨는 갑자기 학파를 탈퇴하고 만다. 거기다 이케우치는 학파를 탈퇴한 지요 씨를 쫓아 교토로 향했다가 연락이 끊기기까지 한다.
여기까지가 <열대> 바깥의 이야기였다. 그 누구도 결말까지 읽은 적이 없는 책을 향한 탐구가 있었고, 결말을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은 마음에 매달리는 이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열대>의 실체를 의심하며 자신이 읽은 것만이 진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같은 책을 읽고 서로 다르게 기억할까 싶은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으나 책은 읽는 사람의 시선만을 온전히 따라가기 마련이라 기억하는 것도, 해석하는 것도 저마다 달라지는 거라 생각됐다.

이후 소설은 <열대> 안의 <열대>로 이어졌다. 기억을 잃고 섬에 표류한 남자가 사야마 쇼이치를 만나 '네모'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마왕이라 불리는 자를 만나고, 그의 딸 지요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신드바드라는 노인을 만나고 또 어떤 이에게서 과거의 이야기를 듣게 되기도 하는 등 이야기가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3장에서 등장한 <열대>의 작가 사야마 쇼이치를 알고 있고 만나 친분을 쌓았던 이들이 4장인 <열대> 이야기 속에 등장한 게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 속 또 다른 이야기였지만 현실 세계의 반영인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타지 모험 같은 이야기였지만 그 때문인지 좀 묘하면서도 으스스 한 느낌을 받았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대체 어떻게 될까, 사라진 <열대>의 작가 사야마 쇼이치는 어떻게 된 걸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마침내 끝에 다다랐을 때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과 비슷한 느낌의 메타픽션이었다. 현실과 판타지가 섞인 환상 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끝이 났지만 완전히 끝난 게 아닌 또 다른 시작이 된다는 게 이 책이 주는 묘미였다. 그런 부분을 초반부터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읽는 동안은 그 세계에 푹 빠져 있었다. 읽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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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누가 뭘 해서 어떻게 됐다는 식으로 요약해 봤자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등장인물과 함께 그 세계에 살면서 푹 빠져 읽는 동안에만 존재한다, 그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 P41

과거에 『열대』라는 소설을 읽기 시작한 우리는 어느새 『열대』라는 세계 그 자체를 살기 시작해 각자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대단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 『열대』만이 진짜인 겁니다. - P245

책을 펴고 읽는 동안 세계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으면 세계는 어디에도 없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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