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
토머스 새비지 지음, 장성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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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중반, 미국 몬태나.
버뱅크 집안 소유의 큰 목장을 필과 조지 형제가 운영하고 있다. 준수한 외모에 호리호리한 몸, 카우보이의 정석을 뽐내는 남자다움을 지닌 필은 다방면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그중 가장 뛰어난 건 신랄한 말솜씨였다. 필이 노마님이라고 부르는 그의 어머니조차 아들을 불편해할 지경이다. 반면에 동생 조지는 필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카우보이와 거리가 먼, 다소 퉁퉁한 체형을 지니고 있었고 말을 타는 것보다 자동차에 관심이 더 많았다. 사려 깊고 다정한 성격으로 인해 소를 몰고 일꾼들을 부리는 일보다 관련 업계 사람을 만나고 은행 업무를 보는 등의 외부적인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조니 고든은 수련의 과정 중에 극장에서 피아노를 치던 로즈에게 한눈에 반해 데이트 신청을 한다. 조니는 로즈의 사랑스러움에 푹 빠져 결혼까지 생각하게 됐고 집안의 허락도 받지만, 수련의 과정이 끝나고 병원에 남아달라는 요청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조니는 도시를 벗어나 25년 동안 의사 없이 살았다는 "비치"라는 시골 마을에 정착하기로 한다. 여관 건물을 산 조니는 2층에 자신의 진료실을 마련해두었고, 로즈와 갓 태어난 아들 피터와 함께 할 행복한 미래를 그린다.

인연이 닿지 않을 것 같던 필과 조지, 조니와 로즈, 그리고 피터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지독한 관계가 시작된다.



작년 극장에서 개봉한 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인상적으로 봤었다. 내용을 전혀 모르고 본 터라 숨 막히는 긴장감에 푹 빠져들었고, 충격적인 결말로 인해 앞서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영화를 본 후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읽어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영화 내용을 잊어버리기 전에 읽을 기회가 왔다.

필과 조지는 형제이긴 해도 상반되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좋았다. 외형에서부터 다른 그들은 성격까지 판이하게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목장일을 함께 하며 각자 잘 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필은 겉으로는 조지를 놀리며 짐짓 시비를 거는 투로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 누구보다 동생을 아꼈던 것처럼 보였다. 조지가 로즈와 결혼했다고 통보했을 때부터 한 번밖에 본 적 없었던 그녀를 향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니 말이다. 로즈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순진하고 다정한 동생을 꾀어낸 돈 밝히는 여자로 단정 지었다. 필은 표현하지는 않았어도 조지를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로즈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필은 자신의 울타리를 철저하게 단속하며 낯선 누군가가 드나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이 인정한 사람만이 집과 목장 같은 친밀한 경계를 들어올 수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있기도 했다. 그런 자신의 울타리에 조지의 아내가 된 로즈가 들어오게 되었으니 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증오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 화살은 당연히 로즈를 향해 겨눠졌고, 영문도 모르고 증오의 대상이 되어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살게 된 그녀는 날이 갈수록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불안감을 잠재울 방도로 알코올에 기대게 된다. 첫 남편 조니가 알코올에 중독되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집에 살게 된 남편의 형에게서 받아내는 멸시와 증오로 인해 모욕감을 느끼는 로즈의 심경이 이해가 되어 고통스러웠다. 시어머니도 하지 않는 시집살이를 남편의 형이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아들 피터는 방학을 맞이해 버뱅크 목장에 머물기 위해 왔을 때 어머니 로즈가 이런 상태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말없이 조용했지만, 유약해 보이는 외면과는 다르게 냉철하고 상황 파악이 그 누구보다 빨랐던 피터는 원인을 금세 찾아낸다. 그래서 아버지 조니에 이어 의학의 길을 걷게 된 피터는 뒤탈 없이 차분하게 모든 것을 정리할 계획을 세웠다. 피터가 어떤 성격을 가진 캐릭터인지 어렸을 때부터 보여줬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 당위성이 부여됐다.

섬세하고 여성스럽게 보이는 피터의 모습은 필에게 무기가 될 수 있었고, 얼핏 필과 같은 차가움을 지닌 사람이지만 피터는 필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냉철한 면이 있었다. 자신의 여린 면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카우보이 필은 감정적인 방심으로 인해 견고하게 세웠던 벽을 모두 허물어버렸고, 그 벽을 허물게 만든 장본인인 피터는 목적을 이뤄내고야 말았다.
누군가가 미워서 겉으로 적개심을 드러내는 필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뒤에서 복수의 칼을 갈며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피터 둘 다 무서운 사람이었다. 처음엔 필이 보여주는 증오가 생생하게 다가와서 두려웠지만, 다정하고 살갑게 굴면서 뒤로는 칼을 찌를 준비를 마친 피터가 더 무서워지기도 했다.

영화만큼이나 재미있었던 원작 소설이었다. 잘 쓴 원작을 영화로 잘 만들기가 어려운데 이 작품은 둘 다 성공했다고 본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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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 주시고
저의 하나뿐인 소중한 것, 개의 아가리에서 빼내 주소서 ─시편 22장 20절 - P7

매일 아침 로즈는 점심 식사 자리를 어떻게 견딜지 걱정했고, 매일 점심을 먹고 나서는 저녁 식사 자리를 걱정했다. 필과 함께 테이블 앞에 앉을 생각 때문에, 그의 침묵과 그의 상스러움, 머리를 긁고 코를 킁킁대는 그의 버릇, 자신을 무시하고 조지에게만 말을 거는 그의 무례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 P276

피터의 눈은 끝까지 로즈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이러지 않아도 되게끔 제가 처리할게요."
로즈는 묻고 싶었다. 처리하다니, 네가 무슨 수로? 만약 그때 물었다면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겠지만, 가엾게도 로즈는 입을 꾹 다물었다. - P311.312

"넌 상냥한 사람이 되어야 해, 상냥한 사람이. 넌 어쩌면 남들한테 큰 해를 입히는 사람이 될지도 몰라, 왜냐면 넌 강하니까. 너 상냥함이 뭔지 아니, 피터?"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
"그래, 그럼 가르쳐 주마. 상냥함이란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앞길에 놓인 걸림돌을 치우려고 애쓰는 거란다." - P68

그 순간, 세월의 냄새가 풍기는 그곳에서, 필은 가슴 깊숙이서 벅차오르는 어떤 것을 느꼈다. 그가 오래전 단 한 번 느꼈을 뿐 다시 느낄 날이 오리라고는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잃어버리면 마음이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기에.
(……중략)
소년은 필이 되고 싶어 했다. 필과 합쳐지고 싶었던 것이다, 필이 오래전 단 한 번 어떤 이와 하나가 되고 싶었던 것처럼.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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