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더스
나가우라 교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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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맨 아쿠쓰 기요하루는 회식 후에 곧장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지 않고 조금 걷기 시작했다. 따뜻한 밤 날씨를 만끽하며 뒷골목으로 들어가자, 하이힐 소리가 자신을 따라오는 걸 느꼈다. 왠지 꺼림칙한 기분에 골목에서 벗어나 택시를 타려는데 비명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 보니 웬 남자와 여자가 싸우고 있었고, 남자의 손에 번쩍이는 무언가가 들려있다는 걸 알게 된다. 기요하루는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남자와 싸우던 여자가 기요하루의 이름을 부르면서 도와달라고 외쳤다. 지나가던 행인들의 눈초리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말리기 위해 달려갔고, 몸싸움 끝에 여자를 구했다. 상대편 남자에게 휘발성 냄새가 나던 순간, 여자가 그 남자에게 전기 충격기를 들이대는 바람에 그에게 불이 붙었다.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얼마 전 미팅 비슷한 자리에서 만났었던 유즈키 레이미였다. 스토킹을 당했었다고 말하는 그녀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자, 레이미는 남자친구인 척해달라고 했다. 기요하루가 왜 그래야 하는지 날이 선 목소리로 대꾸했는데, 그녀는 자신도 죽일 거냐는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이 사건이 뉴스에 보도된 후 공공연한 시선으로 인해 레이미의 병문안을 갔을 때, 그녀는 기요하루가 초등학생 시절 같은 수영 클럽에 다니던 5학년 여자아이 구라치 마나미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기요하루에게 첫사랑이었던 구라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얼마 전에 살해당했다. 그녀가 사라졌던 날 어떤 남자가 구라치를 따라가는 것을 본 기요하루가 진술을 했지만, 그 남자 오이시 가나토에겐 알리바이가 있어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심지어 기요하루의 부모는 오이시에게 민사소송을 당해 합의금을 물어야 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기요하루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오이시가 아파트 옥상을 수리하다가 추락사했는데, 레이미는 사고사가 아닌 기요하루가 죽인 거라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전직 경찰 무라오 구니히로가 레이미에게 증거를 넘겨줬다고 말하며 기요하루가 오이시의 알리바이를 증언해 준 사람과 그들의 아내, 애인들까지 총 8명을 죽였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기요하루가 뭘 원하는지 묻자 레이미는 19년 전 감쪽같이 사라져서 죽은 채 발견된 엄마의 사건과 함께 실종됐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언니의 행방을 조사해달라고 했다. 경찰이 아닌 살인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면 무언가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병원에서 나와 머무는 호텔로 돌아오자, 과거 친오빠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현직 경찰 노리모토 아쓰코가 찾아와 레이미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얼마 뒤 기요하루는 아쓰코와 함께 레이미가 말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완벽한 살인이자 복수를 했던 기요하루와 아쓰코는 레이미가 찾아오기 전까지 너무나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은 살인자이기는 했으나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닌, 목표했던 사람만을 죽이고 다시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기요하루와 아쓰코가 무섭다기보다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되는 누군가,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상해를 입힌 누군가를 향한 증오라는 감정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레이미가 기요하루, 아쓰코를 찾아가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살인을 언급하며 도와달라고 했을 때, 거부감을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당연한 얘기였다. 그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고 여태껏 잘 살아왔는데,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모든 걸 알고 있고 증거까지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변호사를 통해 폭로하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레이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함께 일을 하고 조사한 정보를 나누고 있긴 했지만, 시작부터 좋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를 향한 의심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특히나 아쓰코는 딸을 언급하며 위협하는 레이미에게 기요하루보다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미혼인 기요하루와 달리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가 있었기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서로를 믿지 않으며 시작된 살인자들의 수사는 의외로 호흡이 잘 맞았다. 현직 경찰인 아쓰코는 기요하루의 능력을 높이 사며, 그와 함께 수사를 하는 걸 즐기기까지 했다. 기요하루는 그저 회사원일 뿐인데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대응하는 방식이 최적화되어 있었고, 악의에 관해서는 타인보다 한두 발 정도 앞서 생각할 만큼 살인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운동을 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몸을 잘 쓰기도 해서 폭력적인 상황에 마주했을 때 신체적으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레이미가 제대로 된 사람을 선택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쓰코는 현직 경찰이라는 점에서 관련 사건에 접근하기 유리했다. 파헤치고 또 파헤치면서 비슷하다고 의심되는 사건을 발견했을 때 수사 결과를 찾아보고 연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윤곽이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레이미의 엄마 사건과 언니 실종에 관한 단서를 찾는 와중에 다른 비슷한 사건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거기서 또 문어발처럼 여러 갈래의 사람들로 이야기가 갈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많은 사람들이 대체 무슨 연유로 이런 기묘한 사건에 얽히게 된 건지 의아하기만 했다.
그러다 후반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그 이유가 밝혀지기 시작했고, 여태껏 알 수 없었던 조직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사람들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보며 그들을 살인자라고 부르며 처벌을 가해야 하는지는 좀 의문스러웠다. 그들이 살인을 저지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요하루, 아쓰코와 같이 무차별적인 살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살인이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 같은 상황이었기에 참작할 수 있었다.
이런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는 법의 허술함 때문이었다. 법은 피해자를 지키기보다는 가해자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폭력, 학교폭력을 당해도 피해자는 도망치거나 체념해야 하는 반면에 가해자는 잘 살고 있는 걸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법이 해주지 않은 단죄를 스스로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기에 안타까운 그들에게 공감 아닌 공감을 느꼈다.

몇 해 전부터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과 주요 사건을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책이 두꺼우면 읽다가 헷갈리거나 등장한 인물에 대해 잊어버릴 때가 있기 때문이었다. 주로 추리,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땐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메모하다 지치곤 하는데, 이 소설도 등장인물이 너무나 많았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면 그 캐릭터와 연결된 사람이 등장하고, 또 등장하는 바람에 계속 메모를 했지만 그러다가도 누구인가 싶어 찾아볼 때가 있었다.
이 부분만 제외하면 소설은 재미있었다. 말하고자 하는 바도 조금은 자극적이었지만 이해할 수 있기도 했다.
작가의 책은 이 작품만 국내에 출판되었는데,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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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면 경찰이 찾지 못한 것을, 경찰이 간과한 것을 반드시 알아낼 수 있을 거야. 범인이 어떻게 엄마와 언니를 납치하고 엄마를 자살로 위장해 죽였는지. 언니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지. 살인자로서 당신의 시각과 사고방식으로 이 사건의 범인에게 이입해서 밝혀 줬으면 좋겠어." - P46

크고 강한 다정함은 쉽게 크고 강한 광기로 변한다. 선의와 정의가 흉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적인 결심이 뒷받침된 다정함은 잔학한 행위를 부추긴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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