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로맨스 소설 작가로 유명세를 떨친 프랜시스는 이제는 명성이 떨어지고 있다. 자신의 책을 받아주는 출판사도 없어서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 중이고,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서 만나 사귄 남자친구에게 사기까지 당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친구가 "평온의 집"이라는 건강휴양지를 추천해 줬다. 친구는 3년 전 그곳에 다녀온 경험을 말하며 몸과 마음, 심지어는 인생까지 달라졌다고 했다. 프랜시스는 의심했지만, 일단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트립어드바이저에 올라온 평을 읽어본 뒤 한 자리 남았다는 평온의 집에 예약을 했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지친 프랜시스는 그곳까지 운전해서 가는 것도 힘이 들었고, 도로에서는 감정이 폭발해 핸들을 내리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거기다 평온의 집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마침 도착한 벤, 제시카 부부와 함께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평온의 집에서 머무는 열흘 동안 개개인의 몸 상태에 걸맞은 식단이 제공된다. 설탕과 커피, 알코올은 절대 금지다. 매일 주는 스무디는 남기지 말고 꼭 먹어야 하고 날마다 계획된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전자기기와 태블릿, 핸드폰 등은 절대 소지할 수 없어서 평온의 집에 입소하면 행복 안내자라 불리는 직원들에게 맡겨야 한다. 만약 술이나 커피, 설탕이 가득 든 간식, 전자기기를 가방에 숨겨왔다면 직원들이 챙겨온 짐을 확인해 그 물건을 가져가기도 한다.
그렇게 엄격한 규칙이 있는 곳에서 프랜시스를 포함한 아홉 명이 함께 모여 생활하게 된다.



일상생활에 찌들어 몸도 마음도 지칠 때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든다. 여행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여러 여행 방법 중 휴양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게 제일일 것 같다. 이 소설에 나오는 평온의 집은 건강휴양지를 표방하고 있었다. 차로 한참 들어가 옛 건물을 개조해 만든 곳에는 정해진 날짜에 예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직원도 그리 많지 않아서 사람에 부대낄 일도 없었다. 거기다 식사도 매일 알아서 챙겨준다니 너무나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엄격한 규칙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일단 커피를 못 마신다는 것에서부터 절대 못 갈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커피를 하루에 적어도 2잔, 많을 때는 4~5잔까지도 마실 정도로 커피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설탕은 절대 금지이고, 술도 안 된다고 하니 휴양이 아니라 중독자 모임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다이어트가 절실한 사람이라면 너무나 좋은 곳일 테지만 말이다. 핸드폰이나 태블릿 같은 것도 안 된다는 건 불편하긴 하겠지만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을 듯했다. 그래도 불편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드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같은 날짜에 아홉 명이 입소하게 된다. 여러 사람의 시점이 돌아가며 등장했는데 그중 비중이 가장 높았던 프랜시스가 먼저 나왔고, 복권에 당첨된 이후 삶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벤과 제시카 부부, 연인이 아기를 원하지만 본인은 원하지 않는 라스, 유명한 풋볼 선수였다가 은퇴 후 가족과 멀어져 버린 토니, 남편과 이혼 후에 네 딸을 키우고 있는 카멜, 그리고 3년 전에 아들 잭을 잃고 슬픔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나폴레옹과 헤더, 딸 조이였다. 그들은 현재의 삶에 여러 문제점들이 있었고, 그 인생을 조금이나마 바꿔보고자 평온의 집에 오게 됐다.
그리고 평온의 집을 운영하는 마샤와 행복 안내자 야오, 딜라일라의 시점도 등장했다. 마샤는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등장했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기절해서 구급 대원들이 방문했었는데, 곧장 깨어났지만 이내 다시 기절했고 심장 박동이 멈춰 사망했었다. 하지만 마샤는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고, 그 일을 경험한 이후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꿔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 그 후 사람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평온의 집을 꾸리게 됐다. 야오는 그때 출동했었던 수습 구급 대원이었고, 딜라일라는 마샤의 비서였다.

모일 사람들이 다 모인 후에 마샤가 등장해 사람들에게 이제부터 며칠 동안 침묵해야 된다고 알리며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처음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외에는 그리 힘든 일은 없었지만 상황이 점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사람들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그리 인상이 좋지 않았던 마샤는 결국 그런 인물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어찌나 고집이 세고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는지, 내가 이런 경험을 하고 인생이 달라졌으니 당신들도 경험하고 달라져야 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맹신자가 따로 없었다. 마샤를 떠받들던 야오까지 못 당해낸 걸 보면 그녀는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심지어 놀라운 것까지 먹인 마샤를 아홉 사람들이 당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머릿수로는 우세했지만 그곳은 마샤의 관리하에 있는 장소라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입소할 때 핸드폰을 모조리 걷어갔으니 외부로 연락할 수도 없었다. 이 사람들이 죽고 나서야 이웃이나 친구, 가족들이 알아챌 것 같아 정말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다행히 잠깐 등장한 캐릭터가 도움을 줄 단서였다. 의심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아홉 명의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미친 여자의 계획에 놀아났을 테니 말이다. 그 캐릭터 덕분에 아홉 명은 무사하게 됐고, 친분이 쌓여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그곳을 나와서도 인연을 이어갔다.
재미있는 점은 평온의 집에 다녀간 그들 아홉 명의 인생이 이전과는 달라지긴 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나 주변 사람, 그리고 인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런데 그들의 달라진 삶을 보며 그럼에도 나는 그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이 좋게 바뀐 것은 그만큼 자극적이고, 다시는 없을 경험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평생 그렇게 살 운명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그들의 삶이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는 건 천만다행이다.
그리고 죽었다 살아난 마샤는 10년 전에 삶이 바뀌었으니 앞으로 절대 바뀔 일이 없을 것 같다. 마지막까지 한결같이 제정신이 아닌 듯 보여 너무 싫었다.

네 번째 읽는 리안 모리아티의 소설인데 두꺼운 분량에도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이니만큼 각각의 매력이 돋보였다.




"약속할게요. 앞으로 열흘 안에 당신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을 겁니다." - P524

프랜시스는 문득 자신이 없어졌다. 열흘 동안 이곳에서 지낼 자신을 상상하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열흘이 아니라 십 년을 갇혀 지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변하게 될까? 날씬하고 가볍고 고통도 없는, 카페인 없이도 아침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P92

마샤는 이미 이 아홉 명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의 자의식과 자기혐오를, 명백한 거짓말을, 그녀 앞에서 무너질 때 자신들의 고통을 숨기려고 하는 방어적인 농담을 사랑했다. 이 사람들은 앞으로 열흘 동안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가 가르치고 양육해야 하는, 그들이 될 수 있고 돼야 할 모습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그녀의 것이었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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