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킹 오레오 새소설 7
김홍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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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대한민국 청계천 공구 상가에 메일이 하나 날아온다. 미국에서 발신된 그 메일에는 M4A1 총을 만드는 데 필요한 도면과 자금, 자원을 제공하겠다고 쓰여있었다. 게임 참여 즉시 케이맨 군도 은행 계좌가 개설되어 제작에 필요한 자금이 지급될 것이고, 총을 가장 먼저 제작해 쏘는 데 성공한 사람은 비트코인 1000개를 상금으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대신 게임을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었다.
청계천 공구 상가 내부에서는 총을 만드는 것에 대해 의견이 나뉘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교회에 미쳐 미국으로 떠났다가 모텔에서 권총 자살을 한 기억이 있는 임다인은 총이라면 질색을 했지만,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강남 한복판에서 총이 발사되어 한 여자가 죽고, 한 남자는 발사된 총알을 뇌에 맞는 바람에 수술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총은 제작자의 손안에서 폭발했다. 그 사건은 전례가 없던 일이라 큰 충격을 안겼지만, 이후 총알이 발사되고 총이 폭발하는 사고가 여러 번 일어난다.



소설은 총기 사고 청정 국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진행됐다. 소설 내용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번역기를 돌린 메일이 등장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게 했다. 제작 비용과 도면, 심지어는 성공할 경우 비트코인을 준다니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 수두룩했다. 공업사 사장이 과거에 철근을 발사하는 사제 총을 제작하고 감방 신세를 졌다고 말을 해도 사람들은 듣지를 않았다. 오로지 임다인만 절대 만들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이후 강남 한복판에서 1차로 총에 맞은 주부 윤정아, 윤정아에 이어 총에 맞아 뇌 수술을 받은 오수안, 정아의 집에서 일하는 집사 이정 등이 등장했고, 총기 사고의 비밀을 파헤치는 집단 "반드시"의 멤버 임다인을 비롯해 사회부 기자 박창식, 국정원 직원 고민지, 사회복지사 양은아 등이 등장했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펼치는 소설이라 캐릭터의 개성이 빛났다. 기계공학부인데 총은 절대 안 만드는 임다인, 사회부 기자이면서 투잡으로 도둑질을 하려는 박창식, 국정원 데스크 직원 고민지, 사회복지사 겸 해커인 양은아 등의 모순적인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개성 넘치는 캐릭터는 총알 파편이 뇌에 박힌 오수안이었다. 수술 끝에 깨어나긴 했으나 그의 머릿속에는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었다. 의사는 생명이나 신체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거라며 총알을 그냥 뒀다고 했는데, 오수안은 수술을 받은 뒤에 미각을 잃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오리지널 오레오 과자의 단맛이 그에게 어떠한 형태로 느껴졌다. 그래서 오수안은 그때부터 오레오를 부숴서 먹고 끓여서 먹기도 하고, 나중에는 마약을 하는 것처럼 오레오를 가루로 만들어 코로 흡입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했다. 과자를 어떻게 먹든 본인 마음이긴 하지만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마침 오수안을 담당한 복지사인 양은아가 컴퓨터를 해킹해서 그 광경을 모두 보는 바람에 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여기에 총알을 맞고 즉사한 주부 윤정아의 남편이 페이퍼컴퍼니 같은 회사를 운영하는데, 마침 청계천에 메일이 날아든 이후에 돈이 활발하게 들어왔다가 나간 정황이 있었다. 그로 인해 윤정아는 걱정이 산더미같이 쌓이기 시작했고, 사고나 죽음에 관한 편집증이 생겼는데 하필이면 총을 맞아 죽은 것이었다. 그러고선 윤정아는 유령이 되어 오수안 앞에 나타나기까지 한다. 거기다 총의 영혼(?) 같은 것도 등장해 갈수록 놀라움을 안겼다.


총 하나로 시작된 소설이고 그것을 중심으로 흐르고 있긴 하지만,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되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중반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다 윤정아가 총의 영혼을 만나 오수안과 함께 자신의 집에 찾아갔고, "반드시"의 멤버들도 그 집에 모이게 되면서 소설의 주제를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에게는 과거나 현재의 상처, 혹은 트라우마 같은 게 있었다. 오수안은 아기 때 방송 출연을 하며 김 반장이라 불리던 스태프에게 허리를 꼬집혔던 기억이 총을 맞고 난 이후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임다인은 아버지와 관련한 과거로 인해 총을 만드는 걸 질색했다. 윤정아의 아들 아주는 과거 입시 트라우마로 인해 모든 것에 의욕을 잃었고 입맛까지 잃었다.
재미있게도 총의 영혼 역시 자신이 총이라는 걸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총이 사용됨으로써 아무리 긍정적인 결과를 낸다고 해도 그건 반드시 누군가를 죽이거나 혹은 겁을 주는 무기로만 사용되기 때문이다. 총 자체가 부정이고 폭력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기에 총의 영혼은 그 영향력을 슬퍼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켜서라도 세상의 폭력적인 부분을 도려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은 것 같다. 두서없이 진행되는 것 같고 B급 감성도 느껴지는데 마지막엔 주제가 와닿는 소설이었다. 짧고 굵게 특이했던 소설이라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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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이 실제로 정산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체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정말로 그 돈을 뿌린다고? 설마. 상금은 허울뿐이고, 끝을 모르고 달려가는 괴짜들의 게임이었다. 정말로 비트코인을 받는다면 그건 덤이었다. 사람의 인생을 한 번에 바꿔놓을 만큼의 거대한 덤. - P55

총 같은 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총알 한 발이 죽이는 건 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의 가정, 하나의 사회, 결국에는 사회 전체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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