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1
배명은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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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은 × 허수아비 두 달 동안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김 피디는 신입 카메라맨 최 군과 외근을 하러 나왔다. 멀리 지방까지 내려가야 하는 길에 하필이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고, 고속도로에 사고가 나는 바람에 국도로 들어서게 됐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최 군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비 사이로 튀어나온 무언가를 피하려다 뭐에 부딪혀 사고가 나고 만다. 밖을 둘러보러 차에서 나온 김 피디에게 하얀 원피스를 입은 웬 여자가 다가와 누굴 찾느냐고,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말에 얼마 전 산 위 절벽 아래로 떨어져 시신 없이 장례를 치른 아내 생각이 떠올랐다.
이산화 × 증명된 사실 물리학자인 이남민 박사가 유일하게 최종 면접까지 합격한 곳은 영혼과 사후세계를 연구하는 연구실이었다. 깊은 산길을 한참 들어간 곳에 위치한 연구실은 돈이 많은 기업, 개인의 후원으로 운영되어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남민은 그곳에서 유령의 존재를 물리학적으로 증명하는 일이 아닌, 이미 증명된 유령, 영혼의 에너지를 측정하는 장비를 개발하는 일을 하게 된다.

왼손 × 이화령 늦은 밤, 무박 국토 종주를 나선 "나"는 쫓아오며 욕을 하는 무쏘 운전자에게서 이화령 터널에서 마주치면 죽여버린다는 협박을 듣는다. 무시해버리고 잠깐 멈춰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곤 어느 길로 갈까 고민하던 나는 기록을 세웠었던 이화령 터널로 향한다. 차도 다니지 않는 터널을 달리는 나를 뒤쫓아오는 자전거 라이더를 만나 본의 아니게 목숨을 건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유사본 × 위탁관리 프리랜서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현은 친구 중혁에게서 정맑음이라는 남자를 소개받는다. 수현은 일에 대한 이야기는 제쳐두고 공포, 호러, 슬래셔 무비에 대한 잡담을 하며 정맑음과 술을 마셨는데, 난생처음으로 필름이 끊겼다.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수현은 아침에 볼일을 본 후 변기 안에서 먹은 기억이 없는 어육 소시지 비닐을 발견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후 정맑음과 술을 마시기만 하면 어김없이 필름이 끊겼는데, 다음날 변기에서는 거즈 손수건, 리필용 투명 테이프 롤을 발견했고 나중엔 손톱깎이까지 나오고야 만다.

사마란 × 그네 아들 성욱과 친하게 지내던 민재가 놀이터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민재와 마지막으로 있었던 사람이 성욱이라서 아이는 경찰 조사를 받고 민재 부모에게 한 얘기를 몇 번이고 또 했지만, 민재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성욱이를 찾으며 민재의 마지막에 대해 물었다. 성욱 엄마는 가뜩이나 이 상황이 짜증이 나는데 성욱이마저 "민재는 추울까"라는 이상한 말을 수시로 물어대는 바람에 잔뜩 예민해졌다.
장은호 × 천장세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먹는 것마저 아끼고 또 아끼지만 몇 년째 좁은 원룸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이 좁은 원룸 월세에서 벗어날 방법은 도무지 없는 것 같아 씁쓸한데, 이 와중에 주인아저씨가 리모델링을 할 거라는 운을 뗐다. 얼마 전 맹장 수술로 모아놓은 돈이 없는 상황이라 막막한 그는 친구에게 들었던 "월월세"가 떠오른다. 설마 나갈까 싶어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 하루 만에 계약자가 나타났다. 신혼부부라던 크고 마른 남자와 작은 여자가 월월세로 들어와 화장실에서 살게 된 이후 이상한 일들만 일어난다.

지현상 × 완벽한 죽음을 팝니다 죽지 못해 살던 정태호는 누가 놔뒀는지도 모를 명함을 머리맡에서 발견하고 적혀있는 곳을 찾았다. 고급스럽게 잘 꾸며진 대기실 같은 곳에서 기다리다가 순서가 되어 상담실로 들어간 그는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남자를 마주한다. 남자는 정태호의 죽음을 두고 이런저런 거래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해도연 ×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 새벽 2시 40분만 되면 딸 수미가 깨어나 울었다. 아내는 일, 남편은 살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미를 재우는 것도 온전히 남편의 몫이었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사고로 딸아이가 아빠를 싫어하는지 도통 잠을 자질 않는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부탁을 하기엔 돌아올 짜증이 벌써부터 겁이 나 차마 할 수 없다. 남편은 잠을 못 자 점점 예민해져서 곰인형에게 말을 걸거나 기이한 상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엄성용 × 고속버스 성식은 헤어지려고 마음먹은 내연녀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갔던 날 바람을 맞은 것으로도 모자라 잠수 이별을 당했다. 짜증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봤는데 받지 않길래 메시지를 남기고 고속버스 막차에 올라탔다. 자리가 많은 버스인데 굳이 성식의 옆에 와서 앉은 남자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한마디 하려는 그에게 남자는 성식의 이름을 부르며 그가 바람을 피운 것을 알고 있다며 자신이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사람을 죽이는 킬러라는 사실을 말한다.
우명희 × 더 도어(The Door)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방문하는 거래처 중역 와타나베를 접대하던 "나"는 그의 별장에 가게 된다. 함께 술을 마시다 와타나베에게 고민이 있는 것 같아 물어보자, 그는 무명화가의 작품을 모으는 취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기괴하면서 아름다운 작품이어야 하고, 화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러면서 와타나베는 서양화를 전공한 조카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말에 조건을 붙여 그림을 그리게 한 이야기를 했다.




뇌리에 각인된 소설은 단연 <위탁관리>였다. 처음엔 공포 장르를 좋아하는 수현의 모습으로 시작되어 업무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소개받은 정맑음이라는 사람과의 술자리로 이어졌다. 두 사람의 만남이 처음엔 그리 특별하지 않았으나 정맑음과 만나고 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먹어선 안 될 것들, 먹은 기억이 없는 것들을 대장을 통해 배출했다. 손톱깎이가 나왔을 땐 정말 경악했고,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붉은 피가 가득한 변기와 화장실 바닥 등을 상상하며 읽으니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그 후에 결말은 오래전 영화지만 마니아층이 탄탄한 시리즈물을 떠올리게 했고, 비슷한 스타일의 다른 영화도 떠올랐다. 이 소설을 장편으로 만들어 영화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네>와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는 완전히 다른 시작이었으나 결말이 주는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네>에서 아들의 친구가 사라지고 아들은 자꾸만 이상한 소리를 해대서 불안하고 예민한 나날이 이어지다가 밝혀진 결말은 두 번의 충격을 줬다. 엄마와 아들이 각각 충격을 안겨줬는데 놀라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했다. 같은 경험으로 인해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모자의 운명이 가련했다.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는 시작부터 오싹하게 만들었다. 새벽에 깬 아기가 무표정하게 아빠를 바라보는 눈빛을 상상하니 왠지 모르게 공포스러웠다. 주부로 사는 남편이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는 아내에게 타박만 당하고 아기마저 아빠를 하찮게 보는 것 같은 상황이 이어지다가 분위기가 이전과는 달라지면서 스멀스멀 공포감을 느꼈다. 그러다 결말에 드러난 반전은 현실적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놀라움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들기도 했다. 육아가 얼마나 고단하게 하는지 여기저기서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몰고 간 상황이 정말 딱했다. 짧은 단편 속에 결말에 대한 단서와 암시를 너무나 잘 쌓아놓아서 놀랐다. 이전에 그저 언급되길래 지나친 부분들이 결말에 딱 들어맞았다. 이 소설 역시 정말 인상적이었다.

한밤중에 자전거 추격전을 벌인 <이화령>과 누가 자신을 죽이라고 청부살인 의뢰를 했을지, 킬러가 누구를 죽였을지 알아맞혀야 했던 <고속버스>는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와 킬러지만 배경이 일상적이라 그런지 더욱 공포스러웠다.

공포 소설이라는 주제로 묶인 이 책은 다양한 장르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줬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오컬트는 물론이고 너무나 현실적인 정신분열증 같은 소재, 살인, 청부살인, 심지어는 SF 공포까지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오후부터 읽기 시작해서 저녁, 밤까지 이어서 읽다 보니 무서워서 혼났다. 상상력이 형편없는 사람인데 꼭 공포물을 접할 때면 빈약한 상상력이 총동원되는 것 같다. 영화를 보듯 장면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졌고 마치 내가 그 상황 속 주인공인 것처럼 느껴져서 정말 무서웠다. 자려고 누웠을 때까지도 공포감이 이어져 웃긴 무언가를 찾아봐야만 했다. 그만큼 몰입감이 좋았다.

새벽에 보는 아기의 맑은 눈동자는 무섭다. 창밖의 가로등 빛이 새어 들어와 아기 눈망울에서 반짝하고 깨질 때는 악마의 미소가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잇몸밖에 없는 저 입속에 보이지 않는 송곳니가 잔뜩 줄지어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작은 입술 사이로 이빨을 드러내며 넌 이제 잠들 수 없어, 라고 말하겠지. 해도연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 - P228

"아주 재미있게도, 당신은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고속버스 안에 있습니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절대 달아날 수 없어요. 우습지 않나요?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엄청 폐쇄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엄성용 <고속버스> - P266

"세상에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너무 많아. 남들이 믿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직접 겪은 일을 부정할 순 없지 않나?" 우명희 <더 도어>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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