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남
슈노 마사유키 지음, 정경진 옮김 / 스핑크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나"는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연쇄살인범 가위남이다. 두 명의 여학생을 각기 다른 곳에서 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문구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위를 목에 꽂았다. 그래서 가위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번에 내가 타깃으로 삼은 사람은 명문 사립고에 다니는 다루미야 유키코라는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미인으로 유명하다고 소문이 난 그녀의 집이 어딘지 먼저 찾아가 보고, 유키코가 평일엔 몇 시에 끝나는지,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지 조심스레 미행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무엇을 하는지도 쫓아다녔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이제 그녀를 살해하려고 마음먹은 날, 나는 유키코가 사는 집 건물 옆에 몰래 숨어있었다. 하지만 해가 떨어져 캄캄한 밤이 되어도 유키코가 나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가는 길에 유키코의 집 근처 공원 풀숲 밖으로 웬 다리가 뻗어 나와 있는 게 이상해서 살펴보니 내가 오늘 죽이려던 그녀가 죽은 채 누워있었다. 죽은 그녀의 목에 가위가 꽂혀 있는 걸 보고 놀라서 도망치려는 찰나, 누군가가 나타나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신고를 해달라고 소리치게 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위남 살인사건의 사체 발견자가 된다.

 

후배 덕분에 말단 딱지를 이제 막 뗀 경찰 이소베는 유키코 살해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연쇄살인사건이라 수사에 합류한 범죄심리분석관 호리노우치가 이소베를 콕 집으며 현장에서 보고 들은 모든 정보를 넘겨달라고 직접적으로 지시하면서 그는 더욱 의욕이 넘쳐흐른다.

하지만 가위남은 치밀한 범죄자라 단서를 남기지 않았다. 여고생을 상대로 한 살인 사건임에도 성폭행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단서를 남기지도, 지문이나 체모도 없었다. 수사가 지지부진한 와중에 이소베는 유키코의 장례식에 갔다가 그곳에 사체 발견자가 참석한 걸 보고는 자꾸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연쇄살인범 가위남의 1인칭 시점과 경찰 이소베의 3인칭을 오가며 진행됐다. 처음엔 그렇게 설정한 게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느꼈다. 이 소설의 반전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와 같았다.

 

가위남은 연쇄살인범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냈고, 정직원이 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을 정도로 일도 잘 했다.

하지만 그곳을 제외하면 가위남에게 인간관계는 전무했다. 가족과 살지 않았고 친구를 만나지도 않았으며 이웃이나 말을 섞는 사이가 아무도 없었다. 가위남이 대화하는 상대는 딱 한 명, "의사"라 부르는 머릿속 또 다른 인격이었다. 처음엔 이 인격이 가위남을 조종해 살인을 저지르도록 하는 게 아닐까 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고, 가위남이 매주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깨어났을 때 나타나 비아냥거렸다. 열받아서 죽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자아 같기도 했다.

가위남이 왜 죽고 싶어 하는지는 나오지 않았는데 그가 저지르는 살인과는 관련이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유가 있어서 살인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죽이고 싶은 대상은 뚜렷하게 정해져 있다는 게 약간 특이한 점이었다.

 

수시로 살인을 하는 게 아닌, 목표를 탐색하다 결정한 뒤 목표물의 행동반경과 동선을 파악하고 마침내 살인을 하기 때문에 가위남은 치밀했다. 허점이나 단서를 남기지 않아서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세 번째 살인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누군가에게 순서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것도 자신의 살인 방법을 모방한 가짜에게 말이다. 하필이면 유키코를 죽이려던 날이라 집 근처에 있었다는 게 문제가 됐고, 더 나쁜 건 범행 장소에서 사체 발견자 신분이 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위험했던 건 범행을 위해 가방에 담아 온 가위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위남은 순발력으로 가위를 처리하고 진술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지만, 누가 유키코를 죽인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자신이 미행하면서 유키코가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갔는지 떠올려보게 됐고, 나중엔 기자 행세까지 하면서 사건을 파헤쳤다.

 

누군가를 만나 탐문을 하는 데에 한계가 있던 가위남과는 달리 경찰들은 공개적으로 사건을 조사할 수 있었지만 가위남에 대해 도통 알아낼 수가 없었다. 가위남의 윤곽을 잡아낸 것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만큼 가위남은 평범한 사람들 속에 녹아들면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사람이었고, 흔적을 잘 숨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계속 머리를 굴리면서 소설을 읽었다. 가위남은 스스로를 뚱뚱하다고 여겼는데 그런 것치고 그림자같이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라 그 부분이 좀 의아했다. 두 가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했는데, 하나는 말이 안 되는 것이라 패스했고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근데 흘러가는 상황이나 소설 속 문장을 읽고 있으면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말 긴가민가했다. 그러다 중간에 어떤 장면에서 확신을 가졌다. 그 장면에서는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거는 아는 사람은 확실히 아는 그런 것(?)이었다. 아무래도 경험의 차이 덕분에 범인을 알아챌 수 있었다.

작가가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게끔 서술해서 깜빡 넘어갈 뻔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나 머릿속에 고정관념으로 못 박힌 것은 때로 실제와 완전히 다를 수도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읽은 일본 추리 소설은 도서관이 재개관하여 신나게 갔는데 이 책이 신간 라인에 꽂혀 있어서 빌려오게 됐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이 책을 블로그 이웃님이 언급하셨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영화로 만들 수 없다는 대화를 나눴던 걸로 기억하는데, 2004년에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됐다고 한다. 책을 다 읽은 후라서 그런지 그 반전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왠지 알 것도 같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던 소설이다. 서술 트릭의 재미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다루미야 유키코를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루미야 유키코는 가위남에게 살해당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P76

"너는 이번 사건이 진짜 가위남의 범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 세상에 딱 두 명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야. 네가 찾지 않으면 누가 찾지?" - P100

가위남. 잔악무도한 살인마. 소녀를 교살하고 목에 가위를 꽂는 연쇄살인범.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그런 선정적인 표현들이 그를 잡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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