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잘생긴 소년 구스토 한센은 양부모의 손에 자랐다. 천성이 나쁜 구스토는 어릴 때부터 반항을 일삼으며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땐 양엄마와 성관계를 가졌고,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양아빠가 그 광경을 목격하게 만들었다. 구스토로 인해 집안이 파탄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집의 친아들은 구스토를 죽도록 미워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여동생 이레네는 구스토를 잘 따랐다.

더 이상 그 집에 붙어있기 싫었던 구스토는 가출을 한 이후 마약을 팔기 시작했고, 수완이 좋은 그를 눈여겨본 "두바이"라는 마약 거물이 스카우트해 더 많은 돈을 벌게 됐다.

 

노르웨이 항공사의 조종사 토르 슐츠는 해외 비행에 나갈 때마다 한껏 긴장돼 있다. 이혼 이후 돈에 쪼들리는 그에게 누군가가 마약 운반책이 되어 달라는 제안을 해왔기 때문이다. 승객보다는 감시가 덜한 편인 조종사라는 직업을 이용해 마약을 외국으로 운반하거나 혹은 노르웨이로 들여오면 꽤나 짭짤한 수입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마약 탐지견이 토르 슐츠의 가방을 콕 집었고, 규정 무게를 넘긴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설명해야만 했다.

 

3년 전, 홍콩으로 떠난 해리는 갑작스럽게 귀국하여 허름한 호텔에 단출한 짐을 풀었다. 그리곤 곧장 옛 보스인 군나르 하겐 반장을 찾아가 마약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군나르 하겐은 경찰청 내에서 해리에게 호의적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해리가 부탁한 감옥 면회에 관한 건은 들어줬다. 감옥에 도착한 해리는 구스토 한센의 살인 혐의로 수감된 라켈의 아들 올레그를 만난다.

 

3년 만에 해리 홀레가 노르웨이로 돌아왔다. 한쪽 뺨에 길게 난 흉터를 가진 그는 이전에 홍콩에서 알던 사람의 사업을 도와주며 제법 잘 나갔고, 끊을 수 없을 것 같던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아 사람다워졌다.

다시는 오슬로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해리가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올레그 때문이었다. 해리는 라켈을 사랑한 만큼이나 그녀의 아들 올레그 역시 사랑했다. 자기 핏줄은 아니었지만 성심껏 아버지 노릇을 했고, 올레그 또한 해리를 종종 아빠라 부를 정도로 잘 따랐다. "스노우맨" 사건으로 라켈과 올레그의 신변이 위험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가족이 되고도 남을 그런 관계였지만, 안타깝게도 해리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은 위험해지거나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멀어져야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친자식처럼 아낀 올레그가 마약을 하며 누군가에게 판매를 한 것도 모자라 살인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해리는 당장에 날아올 수밖에 없었다. 해리가 아는 올레그는 살인 따위를 저지를 아이가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사권이 없는 해리는 예전부터 친했던 베아테의 도움을 받아 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먼저 둘러보았다. 아쉽게도 딱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고 베아테의 말에 따르면 모든 증거가 올레그를 가리키고 있어서 빼도 박도 못하는 듯했다. 더군다나 감옥에 찾아간 올레그는 떠나버린 해리를 증오하며 사건에 관한 그 어떤 말도 하려 하지 않았다.

해리로서는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 신분이 아니라서 정식으로 알아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베아테의 도움을 받는 것 역시 그녀의 입지를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전 신분증을 이용해 하는 데까지 조사를 했고, 때로는 누군가를 협박해서 통화 기록 같은 정보를 빼내기도 했다.

 

해리의 비공식 수사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시점이 등장했다. 이미 죽은 구스토의 시점에서는 그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보여주며 올레그를 어떻게 만나 친구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약 운반책인 비행기 조종사 토르 슐츠도 초반에 등장해 여러 미끼를 던졌지만, 왠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사람은 아닌 것 같더니 역시나 중간에 살해당했다.

이들 외에 중요한 건 두바이의 경찰 끄나풀로 활동하는 트룰스 베른트센의 시점도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전 시리즈에서 해리와 부딪치는 것 같으면서도 업무상 협조를 해야 했던 미카엘 벨만의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이자 현재는 온갖 더러운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었다. 풍기는 분위기가 워낙 음침해서 구스토 사건에 중요한 용의자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대신 미카엘 벨만과 접점이 많은 인물이라 트룰스의 시점에 미카엘이 자주 등장했는데, 이 인간은 머리가 너무 좋은 탓인지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대신 의심의 연기만 여기저기 잔뜩 피워놓았다. 미카엘 벨만의 정체는 언제쯤 밝혀질는지 궁금하다.

 

이들 외에도 여러 사람이 등장했지만, 왠지 모르게 수상한 느낌을 풍기던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 끝난 줄 알고 홍콩으로 가려던 해리가 다시 돌아와 그 사람과 마주하면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비밀이 밝혀졌다.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 그런지 생각하는 것도 이상했던 사람이었다. 머릿속에 자신의 일, 업무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듯했다. 그런 점에서 해리와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그 사람이 구스토를 죽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다시 한번 뒤집혀 역시나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추락이나 다름없었다. 정말 그럴 줄은 몰랐던 사람이라 충격을 받았다. 과연 이 이후에는 그 사람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하지만 최근 나온 시리즈의 줄거리를 보니 잘 지내는 듯.)

 

해리의 행동을 보면 싫어해야 할 요소가 다분한데도 어쩐지 응원하게 된다. 경찰인데 알코올중독자이고 사람을 워낙 가리는 편이라 누군가에게는 거만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며, 상사조차 곤란하게 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근데 매력적인 건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고 자신이 신뢰하는 몇 안 되는 동료들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며 오로지 라켈만을 사랑하는 순정파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여자 몇 명과 섹스를 했었고 이전 시리즈인 <레오파드>의 카야와는 잘 되는 것 같다가 홍콩으로 떠나버리기도 했지만, 해리의 마음속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라켈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해리를 응원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측은지심 때문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짧게 스쳐간 연인은 물론이고 동료와 상사까지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이 시리즈를 9권째 읽고 있는데 해리에게 이런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농담 삼아 하는 말로 작가가 주인공 안티라고 할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가까운 누군가가 죽거나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대신 뒤통수를 워낙 세게 때려서 마음의 상처가 좀 클 것 같긴 하다.

 

전작과는 다르게 분량이 조금 줄어들어 500페이지가 넘는, 나름 짧은(?) 시리즈였다. 해리 홀레 시리즈가 600~700페이지가 기본인 벽돌책이라 그런지 500페이지를 훌쩍 넘긴 이 책은 짧아서 금세 읽었다. 좋아하는 시리즈이고 재미있기도 해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넌 늘 나한테 거는 기대가 너무 커, 올레그. 너무 커. 나 역시 네가 나란 인간을 더 좋게 봐주길 바란 것도 있고."
올레그는 고개를 숙이고 손을 보았다. "아이들은 원래 아버지를 영웅으로 보는 거 아닌가요?" - P330

"올레그는 자네를 사랑했네. 아비가 아들에게 받고 싶은 그런 사랑. 열정 넘치는 도덕주의자인 데다 우리처럼 사랑에 굶주린 아비들은 패기가 어마어마하지. 우리의 약점은 예측 가능하다는 거야." - P504.505

"내가 도망쳤다고 생각하지 말아주길 바랐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일들이 있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네 곁에 없다고 해서 네가 나한테 중요한 사람이 아닌 건 아니란 뜻이야.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건 아니야. 누구나 다 갇힌 신세야. 세상사의 감옥에. 우리 자신의 감옥에." - P3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