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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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동네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헨(헨리에타)과 로이드 부부는 동네 주민들을 위한 파티에 참석한다. 별로 참석하고 싶지 않았던 헨은 로이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티에 가게 되는데,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줄인 이름에 대해 여러 번 말하고 대부분 아이가 있는 부부들 사이에 있다 보니 역시 괜히 왔다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다 자신들처럼 아이가 없는 매슈와 미라 부부를 만난다. 알고 보니 바로 옆집에 살던 그들은 아이가 없다는 공통점으로 얼마간 대화를 나누게 되고, 미라가 헨에게 왠지 모를 호감을 느껴 식사 초대도 하게 된다. 미라 부부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집 구경을 하던 헨은 매슈의 서재에서 그가 수집해 진열해둔 여러 물건들을 보다가 기절할 듯한 충격을 받는다. 정확히는 펜싱 트로피를 보고 놀란 것이었다.

 

헨 부부가 이곳에 이사를 오기 전에 살던 동네에서 더스틴 밀러라는 남자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에 조증으로 약을 먹던 헨은 그 사건에 집착해 자세하게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더스틴은 의자에 묶여 머리에 강력 접착테이프로 고정된 비닐봉투를 쓴 채 질식사했고, 지갑과 노트북, 그리고 펜싱 트로피가 사라졌다. 유소년 체전 펜싱 대회에서 받은 그 트로피는 더스틴이 고등학교 때 받은 것이었는데, 사립학교 교사인 매슈가 일하고 있는 바로 그 학교였다. 헨은 그때부터 매슈가 범인이라고 의심하며 예의주시하게 된다.

 

 

 

소설은 옆집 남자를 살인자라 확신하는 헨과 그녀가 자신의 살인을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매슈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됐다. 시작부터 매슈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에 후반에 다른 반전이 있을 거라는 예상을 했다.

 

헨이 펜싱 트로피를 눈여겨봤다는 걸 눈치챈 매슈는 곧바로 핑계를 대며 그 물건을 치웠고, 헨은 잘못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옆집을 방문해 자기 집 인테리어에 참고하고 싶다는 거짓말로 미라의 안내를 받다가 트로피가 사라진 걸 보고 확신을 한다. 그때부터 헨은 매슈를 미행하는데 읽는 내내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르겠다. 매슈가 살인자라 혹시라도 헨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슈는 여자를 절대 해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비롯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창녀 취급을 하며 온갖 학대와 폭력을 일삼았다. 심지어는 접시를 바닥에 두고 어머니에게 개처럼 무릎 꿇고 밥을 먹으라고 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끔찍한 인간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던 어머니를 가여워했기에 매슈는 여자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매슈는 펜싱 대회에 나갔을 때 같은 학교 여학생을 강간한 더스틴을 죽인 것이었고, 현재 같은 학교 교사인 미셸의 남자친구 스콧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고선 그 역시 때려죽였다.

이렇게만 보면 매슈가 나쁜 놈이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살인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범죄이지만, 강간을 하고도 법적으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잘 살아가는 짐승 같은 인간들을 처단하는 게 과연 나쁘다고만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매슈가 강간범을 살해함으로써 훗날 발생할지도 모를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논리에 나도 모르게 설득됐다.

 

헨은 어느 정도 자란 후부터 음산한 책이나 죽음에 관련된 것들에 관심이 생겼다. 어둡고 징그러운 그림으로 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현재는 그 경험으로 기괴한 분위기의 동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 1학년 때 죽음에 대한 집착이 조증과 겹쳐 다른 학생과 문제가 생기고 만다. 그 학생의 기숙사를 습격하는 바람에 헨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현재도 헨은 약을 먹고 있었다.

이런 문제가 괜히 언급되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슈가 범인이긴 하지만 헨이 정서적으로 완벽하게 맑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착각이거나 잘못 봤거나 하는 등의 반전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쫓고 쫓기는 헨과 매슈 외에 다른 가족들도 종종 언급됐다.

같은 집에서 똑같은 광경을 보고 자랐을 매슈의 동생 리처드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었다. 여자를 성적으로만 보고 지배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기에 매슈는 동생을 멀리했지만, 끔찍해도 어쩔 수 없는 형제라 출장이 잦은 미라가 집을 비울 때 가끔 리처드를 불러 만나곤 했다. 미라가 리처드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처드가 이웃에 사는 헨에게 관심을 보이고, 스콧 사건으로 알게 된 미셸에게까지 관심이 이어지면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미라의 시점도 종종 등장했는데, 스콧 사건으로 매슈가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그녀는 과거를 회상했다. 예전 남자친구 사건으로 매슈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내 가지고 있었지만 미라는 그런 생각을 한쪽으로 치워두었다. 하지만 스콧 사건으로 다시금 그 문제가 떠올라 자신의 남편을 옹호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속으로 갈등하게 된다.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 결말이나 반전을 그려보게 되는데 나는 대부분 맞히지 못했다. 범인을 맞힌 적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젬병이지만, 그래도 이런 소설을 읽을 때 매번 생각해보긴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반전을 그려봤다. 하나는 헨의 남편 로이드가 의심스럽다는 점이었는데 당연히 이건 틀렸고, 다른 하나는 정확하게 맞혔다. 아무래도 소설 속 반전이 다른 여러 스릴러 소설에서 차용된 것이라 쉽게 예상했던 것 같다. 초반에 낌새가 있었고 중반엔 확실한 단서도 있어서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반전을 눈치채긴 했어도 소설은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가서 뚝딱 읽어버렸을 만큼 재미있었고,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덮을 수 없기도 했다. 역시나 재미있는 피터 스완슨의 스릴러 소설이었다.

by. 매슈
"그들은 세상에 불행을 퍼뜨렸을 겁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을 거예요. 그런 자들을 세상에서 삭제하는 건 곧 세상에 행복을 더하는 겁니다." - P262

by. 헨
"난 당신을 이해 못 하겠어요. 미안하지만 전혀요. 난 당신이 잘못된 도덕관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살인이 하고 싶어서 그 잘못된 도덕관을 계속 자기 자신에게 주입하는 거예요. 당신은 살인을 좋아해요. 그건 분명하다고요."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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