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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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5살 많은 삼촌은 이소룡에게 푹 빠져있던 사람이었다. 이소룡이 죽었다는 소식에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삼촌은 나와 동구형을 데리고, 개구리를 잡다가 쫓아온 종태와 함께 뒷동산에 올라 추모를 했다. 그런 삼촌이 제 눈엔 멋있었는지 종태는 그때부터 삼촌에게 무술을 배우며 사부님이라 불렀다.

홀로 연마한 무술이지만 삼촌은 이소룡과 비슷한 태가 났고, 시비를 거는 동네 양아치를 때려눕힐 수 있을 정도로 제법 실력도 있었다. 덕분에 삼촌은 시골 동네에 영화 촬영을 온 스턴트의 대역으로 딱 한 장면을 촬영했다. 그때가 삼촌 인생의 전환점인 이유는 삼류 여배우 최원정을 보고 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던 삼촌의 인생이 하필이면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한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삼촌이 당시 만나던 오순이 임신했다는 말에 무서워서 서울로 도망을 쳤다가 굶주림에 들어간 북경반점에서 배달원 생활을 시작했고, 고향 동네에 촬영 왔었던 스턴트 배우를 우연히 다시 만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삼촌에겐 잊을 수 없는 최원정과도 계속해서 엮이고 또 엮인다.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고래>로 천명관 작가의 이름이 각인됐던 기억이 난다. 두 번인가 세 번쯤 읽었던 책인데, 그래서인지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는 착각을 했다. 정작 읽은 책은 <고래>와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뿐인데 말이다.

고작 두 권 읽었을 뿐이지만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고래>와 비슷한 대서사시였다. 이소룡을 존경한 삼촌 권도운의 10대 때부터 50대가 됐을 때까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책에 담겨 있었다. 삼촌의 곁에서 지켜보고, 직접 때로는 간접적으로 듣는 조카 상구가 화자였다.

 

먼 지역에서 서자로 태어나는 바람에 존재도 몰랐던 삼촌이 졸지에 고아가 되어 집에 찾아왔을 때가 8살이었다. 아버지의 동생이었지만 거의 아들뻘이나 마찬가지였기에 10대까지는 조카 상구, 동구와 함께 친구처럼 어울렸다. 그리고 이소룡의 매력에 흠뻑 빠져 무도인의 길을 걸으려고 하면서부터 사건의 연속인 인생을 살게 된다.

독극물의 여왕 오순과의 끈질긴 인연이 시작되었고, 마주칠 때마다 삼촌에게 굴욕을 당해 깊은 인상을 남기는 도치, 도치의 형님 토끼와의 알 수 없는 인연도 있었다. 북경반점에서는 칼판장의 거짓말에 순진하게 속아넘어가기도 했고, 마 사장의 의외의 선의에 꿈을 이룰 뻔하기도 한다. 그리고 최원정과의 믿을 수 없는 재회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돋보였던 건 정말 다채로운 캐릭터들이었다. 조금 미운 구석이 있나 싶다가도 나중엔 삼촌과 전혀 다른 관계가 됐고, 심지어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친구 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서로 친밀했으나 돌아가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섰다가 다시 관계가 회복됐던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캐릭터들의 활용도 역시 뛰어났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시 등장하며 삼촌에게 도움을 주는 캐릭터들이 유난히 많았다.

 

출생부터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삼촌의 인생은 어느 순간부터 지독해졌다. 서울에 갔을 때 온갖 사건을 겪었지만 나쁘지 않았고, 군대 제대 후에 형님을 도와 농사를 지을 때도 괜찮았다. 하지만 읍내에 뭘 사러 갔다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면서부터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세하게 언급된 그곳에서의 생활이 정말이지 너무 충격적이라 계속 놀라며 읽었다.(욕 나온다, 그 XX.) 삼촌이 그곳에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대학생이 된 상구는 데모에 나가기도 했다. 고난의 80년대를 삼촌과 조카가 각자 다르게 경험한 셈이었다.

 

삼청교육대에서 나온 후에는 최원정과의 관계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대의 삼류 여배우였기 때문에 박복한 팔자가 이어졌고, 곁에서 지켜보는 삼촌 역시 그녀를 향한 마음으로 인해 누명까지 썼다. 삼촌과 최원정 둘 다 너무 가여워서 안쓰럽고 불쌍해서 이제 그만 좀 괴롭혔으면 하는 생각을 내내 했다.

삼촌의 인생이 담긴 내용의 결말은 사랑이었다. 쓰기만 하던 인생에서 유일하게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여인을 향한 마음은 끝내 닿아서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겐 해피엔딩이라고 해도 그동안 개고생을 너무 많이 한 터라 괜히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삼촌이 인복이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억울함을 알아준 사람, 다시 찾아와 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정도면 이제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고래>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 소설이었다.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여주는데 어떻게 이렇게 계속 사건이 이어지면서 온갖 관계들이 엮이고 또 엮일 수 있는지 감탄했다. 사건만 있는 게 아니라 상황이 너무 웃겨서 여러 번 소리 내서 웃기도 했다. 그리고 문장 또한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며 천명관 작가만의 스타일에 다시 한번 푹 빠졌다.

 

이소룡의 무술로 시작해 최원정을 향한 사랑으로 마무리된 삼촌 권도운의 거창하거나 또는 소박한 꿈을 향한 인생에 대한 소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 삼촌은 나한테 그냥 삼촌이야. 뭐가 될 필요도 없어. 난 이소룡도 필요 없으니까 그냥 삼촌이면 돼. 1권 - P245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의 생은 그것이 무엇이 됐든 우리가 감당하기에 늘 너무 벅차리라는 것을. 그래서 또 눈물이 나고 그 눈물이 마를 즈음에야 겨우 우리가 애초에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2권 - P23

─ 꿈이 현실이 되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야. 꿈을 꾸는 동안에는 그 꿈이 너무 간절하지만 막상 그것을 이루고 나면 별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거든. 그러니까 꿈을 이루지 못하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 정말 창피한 건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게 되는 거야. 2권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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