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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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지배하는 독재시대의 루마니아.

대학을 다니며 기숙사 생활을 하는 "나"와 같은 방을 쓰는 롤라가 벽장 안에서 자살했다. 롤라는 나의 허리띠를 사용해 목을 맸고, 내 트렁크에는 롤라의 공책이 숨겨져 있었다. 몰래 읽은 공책 안에 담긴 글에서 롤라의 억울함을 느낀 나는 그것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숨겨뒀지만, 사흘 후 공책은 사라졌고 롤라는 당에서 제명되었다.

 

그 후 나는 롤라와 같은 방을 쓰던 여학생을 찾는 남학생 세 명을 만난다.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와 정치적인 대화를 비밀스럽게 나누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글을 쓰며 자신들만 아는 비밀 장소에 그 흔적들을 숨겨놓는다.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비밀경찰의 타깃이 될 수 있는 시대였다. 길거리에서는 물론 같은 기숙사, 직장,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에서도 도청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사람들은 말을 아끼고 속으로 곱씹었다. 마음속에서 자라난 말은 어느새 그 크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마음이 담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이 입안에 고여 닳고 닳아버리면 마음 안에 짐승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제정신을 유지하며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기보다 화자의 할머니처럼 무의미한 말을 하는 짐승처럼 사는 듯했다. 마음속에 생겨난 짐승은 억눌린 자유를 뜻하는 게 아니었나 싶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 쓰고 싶은 글을 쓸 자유,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을 그런 자유 말이다.

 

누군가는 자유롭게 원하는 말을 하며 살기 위해 도망을 치기도 했지만, 국경을 넘는 걸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혹여 무사히 빠져나가 독일에 도착하더라도 자살로 보이는 살인을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나라 밖에서도 목숨을 지킬 수 없다는 것에 사람들은 좌절해 겉으로는 당에 충성하는 당원들과 같은 행동을 했다. 당에서 지시받은 곳에서 일하며 서로를 감시하는 사람들과 점점 동화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갑갑하게 목을 조여왔다.

당에서는 손톱만큼의 틈도 허용하지 않아 평범한 단어 속에 자기들만의 비밀스러운 의미를 담은 편지를 써서 보내면 어김없이 경감 프옐레의 호출을 받았다. 편지는 검열당하고 가깝다고 생각했던 친구는 화자를 배신하기도 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화자와 세 이성친구들의 연대는 더욱 끈끈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화자인 "나"는 롤라의 죽음과 공책이 관련되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에 충성을 하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당원이라고 할 수는 없는 롤라를 직접적으로 고발하지는 않았지만, 못 본 척하며 조금은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괴리감은 증오라는 감정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독재시대의 억눌린 자유는 사람들의 마음을 망가뜨리고 감정을 뒤틀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화자는 롤라의 공책을 통해 만나게 된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와의 인연으로 자유를 갈망한다.

 

독재시대라는 배경을 통해 우리나라의 1970~80년대를 떠오르게 했고, 입 밖으로 낼 수 없어 속으로만 자유롭게 노래하며 시를 읊었던 부분에서는 일제강점기를 생각나게 했다. 비슷한 역사의 흔적을 지나왔기 때문인지 머나먼 동유럽 국가에 동질감을 느꼈다. 자유를 빼앗기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겉으로 냉정을 유지하지만, 마음속에 담긴 염원은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었다.

 

10여 년 전에 읽은 소설인데,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 다시 읽었다.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대략 인지하고 다시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문장에 담긴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미친 사람들만이 대강당에서 손을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두려움과 광기를 맞바꿨다.
그러나 나는 거리에서 사람들 수를 더 셀 수 있었다. 나는 내게 말할 수 있었다. 거기 아무개. 혹은 거기 천(千). 도저히 미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 제정신이었다. - P57

모든 도주는 죽음을 향한 프러포즈였다. 그래서 소곤거림은 매혹적이었다. 도주의 절반은 감시원의 개에게 들키거나 총탄에 맞아 좌절되었다. - P82

그들은 상점에 늘어선 줄 같았다. 누가 계산대에서 돈을 치르고 죽음을 들고 나가면 뒤에 선 사람들은 앞으로 움직였다. - P171

우리를 끝내 구해준 것은 인내였다. 그것만큼은 우리를 놓아버려선 안 되었다. 찢기더라도 곧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줘야 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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