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그라운드
S.L. 그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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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시작된 아오바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혼란을 겪는 와중에 종말에 대비한 몇 가족들은 150만 달러를 투자해 사들인 메인 주의 생존 콘도로 향한다. 지하로 뚫린 거대한 아파트처럼 생긴 성소는 각 층마다 2세대가 거주할 수 있고, 공기 필터나 와이파이, TV 등의 편리 시설을 비롯해 1년 동안 그 안에서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음식과 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락실과 수영장, 체육관 등이 딸려있어 지루하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생존 콘도를 설계한 그레그 풀러를 포함해 강압적인 아빠와 종교적 믿음이 강한 엄마, 쌍둥이 남매로 이루어진 거스리 가족, 엄마와 한국인 아빠, 게임을 좋아하는 재이 가족, 어린 딸에게 무심한 아빠 타이슨과 얼떨결에 이곳에 따라오게 된 보모 케이트,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매덕스 부부, 그리고 도착했을 때부터 아픈 엄마로 인해 감금된 단하우저 가족이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성소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던 윌 부셰가 며칠 동안 그레그를 도와주러 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성소는 처음부터 잡음이 많았고 어떤 사람들은 상대에게 호의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초면부터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다 성소의 설계자인 그레그 풀러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얼마 뒤에는 그곳에 갇히게 됐다는 걸 알게 된다.

 

 

 

지구 종말이 갑자기 찾아와서 전 세계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는 게 아닌 피하면 살 수 있을 정도의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걸 알게 된다면 누구나 셀프 감금을 하게 될 것이다. 집안에 먹을 것 등을 쌓아두고 뉴스를 주시하면서 언제쯤 소강상태에 접어들지 기다리는 일 외엔 할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핵폭탄이 터져도 안전한 성소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성소가 계획된 것과 다르다면, 함께 지내고 있는 사람들 중 살인자가 있다면, 더욱이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 바깥에 나갈 수조차 없게 된다면 사람들은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소설은 정말 안전하다고 여겼던 성소에 다양한 가족들이 모여 얼마간 지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만큼 성소에도 온갖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작은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 인종차별주의자가 있었고,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려고만 드는 사람, 모든 이들을 삐딱하게만 보는 사람과 의심만 하는 사람,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도 존재했지만 처음 느낀 사람들의 이미지는 소설이 진행되면서 점점 알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레그 풀러 사망 이후 다른 사람들이 차례로 하나씩 죽은 채 발견되면서 모든 이들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바깥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원치 않게 감금되면서 성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극한의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사람들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소재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선하기보다는 악한 것 같다고 느껴진다. 생존이라는 중대한 문제가 달려있어서 예민해질 수 있다는 건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당장 자신에게 해를 끼친 누군가에게 악감정을 가질 수는 있어도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람에 대해 살아있어 봤자 음식, 물이나 축내지 뭐 하겠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정말 무시무시한 논리였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살인자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소름이 끼쳤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인물이 살인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건 그 사실을 알고서도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그런 행동을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걸 납득한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성소 안이나 밖이나 끔찍한 건 마찬가지였다.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릴러라 읽는 동안 점점 숨이 막혀왔다. 입주 직후부터 인터넷이 안 되기 시작하고 나중엔 TV도 나오지 않고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게 되어 악취가 풍기면서 정말 답답해졌다. 그리고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에 살인자와 함께 있다는 것 또한 두려움을 줬다. 읽는 내내 온갖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다.

소재와 내용이 흥미롭고 반전도 있어서 영화로 만들기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거주자들 중 몇몇 사이에 근본적으로 이상한 분위기가 깔려 있다는 기분과 부합하는 말이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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