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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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패트릭의 어머니 엘리너가 '마침내' 사망해 장례식이 열린다. 아버지 데이비드와 친했던 니컬러스 프랫을 비롯해 허영 많은 엘리너의 동생 낸시, 패트릭과 이혼한 메리, 메리와 바람을 피웠던 남자, 그리고 패트릭의 전 애인과 친구들까지 모두 장례식에 참석한다.

죽은 사람을 애도해야 마땅한 장례식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에 깊이 빠지고, 심지어는 속물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시리즈의 4편인 <모유>에서 엘리너는 자신의 재산과 프랑스의 집을 아들 패트릭이 아닌 샤머니즘 단체에 몽땅 기부를 했었다. 그 단체의 책임자나 다름없는 셰이머스는 기부를 받기 전까지는 엘리너에게 그렇게 알랑방귀를 뀌어대더니 재산을 모두 기부받자 입을 싹 닦고 요양원에 있는 그녀를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열받은 패트릭은 다시금 알코올 중독 증세에 빠져버렸고, 치매가 와서 말을 못 할 지경에까지 이른 엘리너는 아들에게 죽여달라는 의사 표시를 간신히 했었다.

 

그런 엘리너가 2~3년 만에 사망한다. 생전에 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던 그녀의 장례식에는 옛 친구들과 자매가 참석했고, 장례식 이후 조문객을 대접하는 자리에는 연락이 끊어졌었던 사람까지 찾아온다.

아버지의 친구 니컬러스뿐만 아니라 모르는 척했지만 사실은 우울증 병동에서 본 적이 있는 여자에게까지 부모의 위대한 인성과 선함에 대해 들어야 했던 패트릭의 괴로움이 느껴졌다. 자신이 아는 부모와 타인에게서 듣는 부모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칭찬에 참다못해 시니컬하게 대응을 하면 잘못 키운 자식 취급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과거를 차마 말할 수 없었던 패트릭은 부모에 대해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해보기도 한다. 자신에게만 나쁜 부모였을 뿐이지 실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엘리너의 과거에서 드러난 데이비드의 만행은 비단 패트릭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엘리너가 프랑스 집에 초대했던 어린아이들을 데이비드가 강간했었다고 하니 얼마나 쓰레기 같은 소아성애자였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을 욕하면 좀 그렇지만 패트릭의 아버지는 욕을 먹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추접스러운 인간이면서도 자신의 친구, 지인들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유쾌한 신사였다는 게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데이비드에게서 패트릭을 방치한 엘리너 역시 제 자식에겐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했다. 패트릭 이전에 부부의 첫 아이는 세상에 나온 지 이틀 만에 사망했고, 데이비드는 배를 타고 나가 아기를 버렸다고 한다. 그런 남편이 혐오스러워서 잠자리를 거부했던 엘리너는 강간을 당했고, 그 결과로 태어난 아이가 패트릭이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데이비드 이 미친놈은 대체 어떻게 돼먹은 인간인지 모르겠다고 욕이 절로 나왔다. 한 인간의 바닥 중의 바닥을 보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이런 쓰레기가 존재할까 싶어 무서울 정도였다.

 

20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마저 떠나보낸 패트릭이 후련해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최근엔 우울증 때문에 자살 감시 병실에 입원했던 패트릭이 이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게 한 부모에게 증오의 마음만 있었던 게 아닌 애증이라는, 일말의 애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차마 눈에 보이는 애정을 가질 수도 없었던 패트릭이 안타깝고 가여웠다.

 

패트릭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까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전과는 다른 인생을 시작할 마음을 가지게 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조금은 다행이라 느꼈던 결말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이야…… 아니, 아버지의 죽음 다음으로." - P196

그는 어머니의 가슴에 손을 얹고 그 앙상함에 깜짝 놀랐다. 몸을 구부려 어머니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는 그 차가움에 깜짝 놀랐다. 이 선명한 느낌에 그의 방어 체제는 더 약화되었다. 그러자 그는 앞에 놓인 한 파괴된 인간을 향한 복받쳐 오르는 연민에 압도되었다. - P70

"오늘 내가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분명하지 않은 생각을 가졌는지 계속 깨닫고 있어. 최종적인 진실이란 없다는 것이지. 한 건물 안의 다른 층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 - P249

그가 오늘 느낀 압박감은 유년기로 돌아간 듯한 무엇이었다. 아버지는 분노와 수술칼을 들고 거기에 있었고 어머니는 피로와 술에 절어 거기에 있었다. 이 경험은 하나의 이야기나 한 세트의 관계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깊이 박힌 ‘표현되지 않음‘의 응어리로 존재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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