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고 나서 그 후의 감상에 대해 무엇인가를 써야한다는 압박감이 지금처럼 커다랗게 다가오는 경우는 처음이다. 짧은 나의 실력으로 이 대작을 읽고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냥 다 집어치우고 ‘직접 책을 읽어 보라’고만 권하고 싶어진다.

 

[적절한 균형]의 작가 로힌턴 미스트리는 1983년 첫 소설을 발표하면서부터 여러 가지 상을 수상하고 ‘부커’상의 최종 후보에도 오르는 등 꾸준히 주목 받는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적절한 균형]으로 그를 처음 만났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어 검색해 봤으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상태이다. 빠른 시일 내에 그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적절한 균형]은 디나, 이시바, 옴, 마넥 등 4사람의 중심인물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주변 인물들로 확산되어가며 사건을 연속해서 중첩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대하소설’형식을 취하고 있다.

비교적 부유층에 속하며 신분제도의 사슬에서 자유로운 미망인 디나. 그러나 그녀만을 들여다보자면 그녀 또한 그리 행복하다 할 수는 없다. 비정상으로 보이는 삐뚤어진 오빠에게 학대받는 10대 시절을 보내고 그 시절의 기억은 그 이후 그녀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

카스트 제도의 낮은 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인 이시바와 그의 조카 옴.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다. 그에 항거해 그들은 대대로 이어지는 불가촉천민이라는 사슬을 끊고자 기술을 배워 재봉사가 된다. 재봉사가 된 뒤 어느 선까지는 그들도 신분상승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운명의 사슬은 그리 만만하고 녹녹한 것이 아니다.

마넥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정신적인 방황을 하는 젊은이다. 그는 앞으로도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사는 인도의 전형적인 중산층이 될 것으로 비쳐진다. 그의 미래가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그가 아무 사고도 행동도 하지 않는 젊은이이기 때문이다. 마넥에게 손톱만큼의 사고나 행동이 있었다면 그는 제거 되었을 것이다. 그의 대학 친구 아비나시처럼. 마넥이 의도적으로 나태한 젊은이라는 비난은 절대 아니다. 운명이 특별히 그에게 관대했을 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이들 네 사람이 한집에 생활하면서 있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 중에 디나가 못쓰는 천 쪼가리를 모아서 만들어 놓은 생리대를 가지고 마넥과 옴이 유쾌한 장난을 치던 장면이 있다. 좁은 집안을 활기차게 뛰어다니며 전혀 악의 없는 장난을 치며 밝게 웃던 두 청년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들의 일생동안 그처럼 순수하고 맑게 행복했던 날들이 며칠이나 될까.

생리대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두 청년을 목격하고 분노로 파랗게 질리던 디나의 모습 또한 한 장의 스틸 사진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 모든 모습을 옆에서 관망하던 이시바의 모습도.

각기 입장이 다른 네 사람의 심리 상태를 작가 로힌턴 미스트리는 그야말로 적절하게 균형을 잘 잡아 구성해 놓았다. 천재적인 대 작가가 아니고서는 그리 완성도가 높진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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