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그런 날이 있다.

암울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속 허우적거리게만 되는, 마치 허리춤에 무거운 돌멩이가 잔뜩 매달린 듯 아래로 아래로만 가라앉는 기분을 어찌해볼 수 없는 그런 날.

그런 날에는 혼자서 조조영화를 보러 가거나 마음을 달래줄 서정적인 소설을 찾게 된다.

아사다 지로작가의 [가스미초 이야기]는 바로 그런 날 읽기 좋은 소설이다.

[철도원]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아사다 지로. 그의 글에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의 소설을 읽노라면 인간은 본래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믿음을 준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뒷배경으로 벤치에 앉아 있는 다소 경직된 표정의 할아버지와 교복을 입은 소년의 모습. 할아버지의 목에 걸린 카메라와 교복에서 우리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상상하게 된다. 표지의 뒤 쪽에는 그 벤치위에 덩그러니 구식 수동 카메라만 남아 있다. 표지의 그림이 말해 주듯이 [가스미초 이야기]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일종의 회고록 형식을 빌리고 있다.

안개마을이라는 뜻의 가스미초는 주인공의 청춘시절처럼 지금은 도쿄에서 사라져버린 지명으로서, 소설 [가스미초 이야기]에는 이 가스미초를 중심으로 총 8편의 이야기가 연작 소설의 형태로 실려 있다.

돌아보면 아름답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겠는가. 사라져 버린 모든 것들은 마음속에 애잔한 그리움을 남긴다.

평생을 사진에 바치고 이제 여든이 넘어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제자로서 가업을 이어 받았으나 이젠 사양길에 접어든 사진관은 버려두고 풍경사진을 찍으며 떠돌아다니는 아버지. 뛰어난 미모를 가진 할머니의 슬픈 생애. 그리고 1960년대의 일본에서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주인공 이노의 모습이 잔잔히 그려진다.

다른 모든 이야기도 좋았지만 60대 중반을 넘긴 할머니의 일상을 그린 [평지꽃]이 특히 마음에 남는다. 그 할머니가 꽃다발을 수로 안으로 내던진 뒤, 난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마치 오래된 흑백영화를 본 것처럼, 아니 한 장의 스틸 사진을 본 것처럼 뇌리에 박힌다.

 

[할아버지는 이 세상이 ‘빛’과 ‘형태’와 ‘그림자’로 되어 있다고 했다.]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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