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잠자는 숲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히가시노 게이고. 물론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추리소설 작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몇 년 전에 읽은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이시가미>의 이미지에 푸욱 빠져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음이 아닌가 싶다. 이시가미는 추리소설 속의 두뇌게임을 펼치는 용의자가 아니라 [폭풍의 언덕]의 <히드클리프>라든가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를 닮아 있다. 근거는 없다 순전히 주관적인 나의 생각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 소설 속, 각각의 인물들이 가지는 독특한 캐릭터에 주의하며 읽는 평소의 독서 습관 때문에 생긴 편견이리라.

<이시가미>도 그렇지만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또한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탐정이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가 그 <유가와>를 버리고 새로운 탐정 <가가>를 탄생시켰다 한다. 현지 일본에서는 한 권, 한 권 작가가 쓴 순서대로 출간 되었겠지만 우리는 총 일곱 권 ([졸업] [잠자는 숲] [악의]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그녀를 죽였다]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붉은 손가락] )이 한꺼번에 쏟아져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한다. 마치 배가 무지하게 고픈 상태에서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 지 망설이게 되는 것처럼 어떤 책부터 읽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 본다.

본래의 성격대로라면 차근차근 검색해 작가가 글을 쓴 순서를 따라가며 읽었을 테지만 이번에는 두 번째 작품인 [잠자는 숲]을 먼저 선택했다. 초록색 바탕에 그려진 매력적인 포즈의 발레리나의 발이 마음을 끌었다.

추리소설의 경우 표지의 그림이 그 외 다른 책들보다는 많은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나는 가가 형사가 이지적이고 냉철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숙한 내면의 상처를 읽어 낼 줄 알고 좀 더 나아가 로맨틱한 면이 있는 인물이었으면 하는 바램. 초록 바탕이라든가 발레리나의 발 모양 이라든가가 그런 바램을 충족시켜줄 것 같은 예감을 갖게 했다. .

결과는 대만족. 가가는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탐정이라기엔 좀 어설퍼 보이는 로맨티스트.

<유가와>에서 번득이는 천재성을 좀 덜어내고 따스하고 다정한 감정을 더한 인물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탐정 <가가 교이치로> 형사이다.

그래서 그는 형사로서 절대 금기인 범인을 사랑하게 되었음에도 고민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당당히 사랑하고 지켜줄 것을 맹세한다.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형사로서의 양심이나 도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세계관이나 인생관, 도덕성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주인공이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였더라면 소설은 어떤 식으로 전개 되었을까 상상하며, 비교하며 읽는 재미 또한 [잠자는 숲]을 읽으며 가질 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