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구재 시사회
최승환 지음 / 낮에뜨는달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흔하게 들어왔던 이야기지만 아무 느낌이 없던 말.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기억들은 다 잊어버리고 시시콜콜 쓸데없는 에피소드들만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봄’은 내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닌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단어로 바뀌었다. 그래서 여자들이 봄에는 특히 우울증이 심해지는가 싶기도 하다.

 

막상 밖에 나가면 매섭기만 한 꽃샘바람도 이렇게 창 안에서 바라보면 그저 포근하게만 보인다.

 

풋풋한 20세 초반의 어느 봄날, 아직은 철 이른 빨간 딸기를 사서 씻지도 않고 서로 경쟁하듯 먹으며 내려오던 하교 길. 그 친구들.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었을까. 배를 잡고 까르르거리던 추억.

 

최승환 작가의 [사십구재 시사회]는 나에게 잊고 있던 20대 초반의 봄날을 기억하게 한다.

 

모든 것이 시작이고 희망이던 그 시절. 늘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준비하던 그 때. 미완이어서 더욱 빛나고 자신만만했던 내 인생의 지나가 버린 봄날.

 

다은과 서준의 이야기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 같은 느낌이다.

 

무작정 마음이 쓸쓸해지는 햇빛 환한 봄날, 아무도 없는 조조상영의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마음껏 울고 나온 느낌. 그리고도 제어되지 않는 슬픈 마음 때문에 영화관 밖으로 선듯 나서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하는 막막함이 느껴진다. [사십구재 시사회]는.

 

소설을 읽는 내내 눈을 찌르는 듯한 환한 햇빛과 노란 꽃잎의 영상을 의식해야 했다. 글자와 글자 사이, 행과 행 사이로 자유롭게 넘나들며 내 눈을 괴롭히던 밝은 햇빛. 그 때문이었을까?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슬픈 내용임에도 끊임없이 봄날을 연상해야 했던 것은.

 

[사십구재 시사회]를 다 읽고 잠을 청했지만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망막을 괴롭히는 햇빛의 환영 사이로 슬그머니 정호승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그렇다. 다은과 서준은 스스로가 사랑이 되어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한없이 걸어가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시 나를 들여다본다. 이제 걷기를 멈춘 듯한 나를.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다만 사랑은 단지 환상이었다고 도리질만 하고 있는 나를. [사십구재 시사회]의 다은과 서준에게서 위로 받고 다시 일어서 한 발짝 떼려 하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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