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에서 1 미도리의 책장 6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기시 유스케 작가의 [신세계에서]라는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동물농장]으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1984년]이라는 책이다. 1948년에 쓰여진 이 작품 역시 가상의 미래를 예상하여 쓴 미래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가 그 책을 읽은 것은 정확하게 1984년 당시였으니 3~40년 전의 작가가 상상한 미래를 직접 살고 있는 내가 책 속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비교하는 재미가 더 쏠쏠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다음 또 다시 가상의 미래를 상상하여 쓴 소설을 마주한다. 가까운 미래도 아니고 천년후의 시간. 도무지 짐작도 상상도 되지 않는 먼 훗날의 이야기이다. 그동안 장르도 많이 발전하고 다양화되어 미래소설이라기 보다는 SF 소설, 판타지 소설 등으로 분류된다.

[검은 집]으로 유명한 작가 기시 유스케는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일반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프리랜서로 독립하여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자신의 꿈과 신념을 잃지 않고 결코 젊지 않은 나이에 작가의 길로 들어서 크게 성공한 기시 유스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작가의 이런 특이한 약력이 아니었다면 [신세계에서]는 다소 선택하기를 망설였을 것이다. 평소 SF소설은 별로 즐기지를 않았으므로.

 

[신세계에서]는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각 권당 거의 500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두께이다. 하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내용에 빠져들어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가 않는다. 긴 호흡을 가지고 단숨에 읽어지는 재미는 그 어떤 소설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1권에서는 마치 성장소설의 느낌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유년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화자로 등장하는 와타나베 사키의 탄생부터 그의 가족과 학교생활, 그리고 사키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 사토루, 슌, 마리아, 마모루 등이 등장하고 각각의 성격과 특색이 정해진다. 1000년 후를 그린 미래의 모습이라지만 인간들이 성인이 되면 주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오히려 물질문명 전, 과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듯 한 목가적인 분위기이다.

2권에서는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주력을 사용하는 인간으로서 완벽한 사회유지를 위해 철저히 인증 받은 인간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부적격자로 판단되면 과감히 제거되는 냉혹한 현실. 인간과 동물의 모호한 경계. 1000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면서 강자만이 살아남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

1000년 후의 세계에서는 주력을 사용하는 인간은 신격화 되어 있고 갖은 노역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알면서 인간을 신으로 모시는 요괴쥐라는 동물이 맡는다. 곳곳의 복선이 암시하는 바, 바로 요괴쥐로 불리는 동물의 반란. 밝혀지는 추악한 진실.

 

[신세계에서]를 읽고 나자 비로소 SF 소설을 제대로 만난 느낌이다. “임자를 만났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뜻하는게 아니겠는가. 비록 이제 겨우 코끼리 발등을 만진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제 기시 유스케 작가가 안내하는 모던 호러의 세계로 여행을 시작해볼까 한다.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검은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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