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는 대로
수산나 타마로 지음, 최정화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언젠가 지인들 몇이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던 중 한 사람이 물었다. 만약 자신이 한 3개월 정도 남은 시한부의 병에 걸렸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여러 가지 대답들이 있었다. 나는 제일 먼저 짐을 정리하겠다고 대답했었다. 마치 이삿짐을 싸는 것처럼. 모두들 의아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버릴 것은 스스로 버리고 가는 것.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주어지는 것. 그것이 간절한 바램이다. 그 바램을 지키기 위해 평상시에 조금씩 정리하며 물건이든 사람이든 심하게 애착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쉽지가 않다.

지상의 가치, 지상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래야 하지 않을까. 물욕과 애욕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벼워지고 싶다.

 

수산나 타마로 작가의 [마음 가는 대로]를 읽고는 한동안 마음이 스산해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한다는 생각이 고작 ‘정원이 있었으면....‘ 이었으니 나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언제쯤이나 이놈의 속물적인 욕심에서 자유로워지려는지..........

책을 읽은 뒤의 그 막막하고 허허롭던 마음이 서평을 쓰는 지금까지도 계속이다.

책 표지의 작가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맑은 눈. 살짝 지은 듯 보이는 입가의 미소.

앞으로 [마음 가는 대로]라는 소설을 떠올리면 본문의 내용보다는 작가의 사진이 먼저 떠오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치 영화를 본 것처럼 수산나 타마로 작가가 바람 부는 정원을 서성대고 있는 장면이 떠오를 것 같다.

 

[마음 가는 대로]는 팔십대의 할머니가 자신이 시한부 병에 걸렸음을 알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가족인 손녀에게 쓰는 15통의 편지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자신이 떠나간 다음에 손녀가 간직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일상들을, 살아온 세월들을,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비밀들을 담담히 써 내려간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세 달을 걸어 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196쪽)

 

섣불리 말할 수 없었던 굴곡진 사연들. 결혼, 불륜, 가족과의 불화. 내면의 갈등. 혼란들을 마치 동화책을 읽어주듯 조근 조근 들려준다. 그녀의 편지를 따라가다 보면 어쩐지 내 마음의 응어리가 스르르 풀리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니? 내면의 자아와 마주치고 싶지 않을 때, 가장 손쉬운 일은 도피처를 찾는 거란다. 내 실수를 다른 사람의 실수라고 우기는 건 쉬운 일이야. 자기 실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지. 이것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인생이 여행길과 같다면, 언제나 내내 오르막인 셈이지.](198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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