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 값싼 위로, 위악의 독설은 가라!
김별아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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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을 돌아보면 난 그리 다정다감한 편이 아니었다. 어디 아니었다 뿐이겠는가. 경우에 따라서는 좀 쌀쌀맞게 느껴지는 성격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것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에서 연유한 것이지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라든가, 다른 사람의 내면 심리 이해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따라서 다른 사람의 눈에 비쳐지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던 것 같다.

그런 성격이 바뀌게 된 계기는 아이의 출산, 육아 등을 겪으면서였다. 세상사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느끼면서 ‘내가 무심코 던진 말, 눈빛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으니 늦되어도 한참 늦되었다 할 수 있겠다. 그 후로는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에게 친절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그런데 바로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 내가 상처를 받는 일들이 빈번해지는 것이다. 어리고 친절하려 노력하는 내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마냥 어리숙하고 만만하게만 보이는지 경우를 넘어선 요구들을 너무 쉽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 것이다. 한번 두 번 그런 일들을 겪다 보면 나는 타인에 의해 마구 휘둘리는 자신에게 더욱 실망하지만 야무지게 거절도 못하고 그야말로 속으로만 끙끙거린다.

더 큰 문제는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찾아오면 ‘이럴 때 이렇게 얘기해 줄 것을, 이것을 요구 했을 때 딱 부러지게 거절할 것을, 하는 후회들도 자신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지도 못하고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는 것. 책을 읽고 있어도 눈으로 글자만 따라갈 뿐 머리는 그 하찮은 생각에 온통 빼앗기고 있었다.

 

김별아 작가의 [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는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지침서이지 싶어서 반가웠다.

특히 첫 장에 소개된 ‘찢어진 청바지 일화‘는 그동안의 나의 바보스러움을 한방에 날려주는 듯한 대리만족까지 얻을 수 있었다.

“남이 뭘 입든 무슨 상관이에요? 제 청바지가 아저씨한테 무슨 피해를 줬는데요? 이런 저런 꼴 다 보기 싫으면 집에 들어앉아 계시지 왜 나와서 돌아다니셔요?”(17쪽)

통쾌하고 시원했다. 책을 읽으면서 십년 묶은 체증이 쑤욱 내려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구나 하며 슬며시 자족의 미소를 흘려본다. 그래 바로 저렇게 말하는 거야 하고 다짐까지 하면서 말이다.

정말 실천이 가능할까? 내가 과연 저렇게 맞받아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나중으로 미루고 이 밤 모욕의 매뉴얼을 한 가지, 한 가지 준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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