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읽었다.

문단의 평판도 그렇고 작가 자신 역시 2007년도 출간된 ‘악인’을 최고로 치는 듯하지만 나에게는 ‘악인’ 보다는 ‘일요일들’이나 이번에 읽은 [사랑을 말해줘]가 더 맘에 든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잔잔한 일상을 그린 소설.

소설 속 인물들이 나름 괴로움으로 인하여 마음속에 광폭한 폭풍이 몰아친다 해도 글을 따라 읽어 내려가는 내 눈에는 따스한 봄빛이 어른거린다.

따스한 봄날에 휘날리는 벚꽃처럼 순수하고 맑은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마치 그 때로 돌아간 듯 가볍게 쿵쾅거리는 나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직은 나른해지기 전인 바람이 살짝 매섭기도 한 청아한 봄날의 어느 한 때가 못내 그리워진다.




[사랑을 말해줘]는 내가 읽은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들 중 가장 절제된 매력을 지닌다.

비슷한 나이대의 일본 작가들의 소설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자칫 잘못하면 무겁고 칙칙하게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 가볍게, 간결하게 표현하기. 그들의 절제된 자기  감정이 부럽기만 하다.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서 나무에 오르진 않잖아. 나무에 올라가면 어떤 풍경이 보일까, 단지 그게 알고 싶어서 오를 뿐이지. 그렇지만 나이를 먹으면 나무에 오르지 않지. 설령 오른다고 해도 그것은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앞서고.“](162쪽)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제작가로 일하는 슌페이는 어느 날 공원에서 우연히 고쿄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된다.

슌페이는 그의 직업이 가지는 특성상 많은 이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하게 되는 혹은 듣게 되는 말들의 홍수 속에서 살아오면서 어느 정도 지친 상태이다. 그 시기에 만나게 된 고쿄는 귀가 불편해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다. 그들의 대화는 당연히 필담으로 이루어지게 되고 슌페이는 생각을 곧바로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글로 정리하는 단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들에게도 자잘한 위기가 오기도 하고, 혹은 너무 익숙해져 처음에는 안타가운 떨림이었던 것이 지겨워지기도 할 것이다.

나와는 전혀 다름 때문에 끌렸었다면 바로 그 이유가 헤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 집 못 찾고 헤맬 때 기분이 어땠어?

   ...

 불안했지

 반드시 찾을 거라 생각했어

 도중에 내가 뭘 찾으려 하는지 알 수 없게 됐어](216쪽)




부디 이들의 사랑이 지금처럼 한고비씩 넘을 때마다 더욱 굳건해지기를.

그래서 사랑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확신하는 이 시대에게 멋지게 한방 날려 주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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