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 ... 널 이별해
김현희 지음 / PageOne(페이지원)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점점 나이를 먹어 가면서 새로운 만남보다는 헤어짐의 빈도가 더 잦은 것 같다.

어릴 때는 연인과의 헤어짐만이 이별인 것 같고 마음이 아파 못 견디겠더니 이제는 모든 헤어짐에 조금은 무뎌지기도 하고, 어느 날 문득 깊은 상실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렇다.

늘 그날이 그날 같기만 하고 어제 만났던 사람들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겠거니 여겼는데 세월이 흐른 뒤 도대체 왜 연락이 끊어졌는지도 모르게 멀어진 사람들도 있다.

나에게 그런 친구가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만나 같은 여고로 진학하여 내리 3년을 단짝으로 붙어 다녔었다.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해서도 요즘 말하는 베스트 랜의 위치는 확고했다. 5~6년 차이가 나게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을 때까지는 종종 만나기도 하고 연락도 주고받았었는데 그야말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 친구는 내 옆에 없었다.

지난 수첩을 뒤져 보기도 하고, 뒤 늦게 수소문을 해봐도 그 친구의 소식은 전혀 감감하기만 하다.

그리고 어떤 친구는 이제 불혹을 넘긴 나이에 와서 내 쪽에서 그만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굳은 결심을 하고 안 만나자니 그 친구는 아무 것도 모르고 뭐라 하지도 않는데 괜히 나 혼자만 괴롭다. 전여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맥주를 조금 마신 날,  내가 그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펑펑 울었다.

술이 깨고 생각하니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한창 때인 20대 때 연애하면서도 안 해본 짓을 이 나이에 그것도 여자 친구에게 왜 이러는가.

조금 창피하고 많이 부끄럽고 하긴 하지만 마치 통과 의식을 치러낸 듯한 후련함도 있었다.

그래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면서 이 정도도 아프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

영화나 소설을 보면 왜 연인들이 헤어진 다음 가해자나 피해자나 할 것 없이 술을 먹고 전화를 걸어 울고불고 하는 추태를 부리는 장면이 그리 많이도 나오는지 이해가 갔다고나 할까. 그렇게 마음아파 전화해서 사정하고 후회하고 했으면서도 결국은 헤어짐으로 결론이 나는지도.

그것은 일종의 통과의식이었다.




김현희 작가의 [바람이 불어, 널 이별해]는 대학시절 만나 5~6년간 사귀었던 애인에게서 일방적인 헤어짐의 통보를 받은 주인공 내가 그를 지워가는 100일 동안의 아픔을 세련되고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낸 소설이다. 젊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이에 하는 이별이라 그녀의 아픔은 차라리 예뻐 보이기까지 한다.

프로포즈를 기대했던 생일 날, 그것도 친구들 앞에서 일방적으로 받은 헤어짐의 통보치고는 그녀의 충격이나 절망이 그리 크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 역시 조금은 마음이 변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흔히들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한다. 그 유통기한이 왜 남자에게만 적용 되겠는가. 그녀 역시 이제는 그의 장점보다는 단점들만이 더욱 확대되어 요리조리 마음의 저울질이 한창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중 그에게 다시 연락이 오고 그가 다시 시작해보자는 메시지를 보내도 그녀는 담담하게 이별을 진행시킬 수가 있었겠지.




세월이 지나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참으로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의 첫 번째는 절대불변이라고 확고하게 믿었던 시절이 그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