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직시라는 단어가 있다.

늘 잡아당겨진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바로 세우며 살고자 열망하지만 쉽지가 않은 것은 나, 혹은 이 땅의 여성들뿐만이 아닌가 보다.

한 때는 내가 처한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에 대하여 갖가지 이유를 대며 자위했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그것은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레이첼 커스크의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라는 소설을 이러한 결론 다음에 접한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하겠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또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삶에 이리저리 휘둘렸을 테니까.




런던 근교의 가상도시 알링턴 파크는 중산층이 주로 밀집되어 있는 안락한 베드타운으로서 이곳에 거주하는 다섯 여자 줄리엣, 어맨다, 크리스틴, 솔리, 메이지의 평범한 어느 하루의 일상을 그린 것이 주된 줄거리이다.

30대로 예상되는 그녀들은 모두 기혼으로서 안정된 수입과 유치원 연령정도의 아이들을 두고 있다.




[머리를 헤치고 그에게 보여 주었을 때, 그때 깨달았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제야 그녀는 그 의미를, 베네딕트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6쪽)




청춘의 한 시기를 마감하고 책임질 아이가 생긴 뒤

늘 그날이 그날 같던 따분한 일상의 연속이긴 하지만,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선 삶의 남루함에 화들짝 놀라는 제스추어 대신 줄리엣은 알고 있었다. 라고 거듭 되뇌인다.

남자인 남편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며 아프게 새기지만 세상을 살아가기에 남자라고 녹록할까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을 보니 내가 이제는 많이 관대해진 모양이다.




[좋아하는 책들도 결국은 자신의 외로움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책들은 야생의 황무지에 드문드문 세워 둔 작은 불빛들 같은 것이었다. 멀리서 보면 한데 모여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면 각각의 불빛들 사이엔 텅 빈 어둠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205쪽)




앞만 보고 달리던 그녀들이 적당한 시점에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그린 소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자신의 지금이 성공이라 느끼든가 아님 더 없는 불행이라 느낄지라도 우리의 주인공들은 그 순간을 딛고 굳건히 일어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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