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밤
세사르 비달 지음, 정창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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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름 고전문학에 흠뻑 빠져 지냈었다.

요즘 나오는 미니 북 중에서도 제일 작은 크기와 비슷하며, 세로로 깨알 같은 글씨가 촘촘히 박혀있는 삼중당 문고를 주로 이용했었다. 이유는 번역이 좋아서도 아니고, 특별히 그 출판사가 맘에 들어서도 아니고, 단지 가격 때문이었다. 당시 7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 버스비가 얼마였는지, 라면 값이 얼마였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으면서 삼중당 문고의 한권 값은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어떤 책은 정말 재미있어서 그 작가의 책을 모두 사 보려 노력하기도 하고, 어떤 책은 오기로 읽으려고 노력하다가 단 한권으로 끝내고 말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면 그 작가의 전작읽기를 시도하는 버릇은 그 때 생긴 듯하다. 그리고 나는 책읽기에 심한 편식증이 있어 고민인데 그 버릇 역시 아마도 그 때 시작되었을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워낙에 유명하고 고증된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을 읽으려는 시도는 했었다. 하지만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에게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영화를 보는 것만큼의 재미도 주지 못했다. 아마도 희곡이라면 고개를 흔들면서 멀리하고 보는 나의 못된 습관은 전적으로 그 때 읽은 세익스피어 작품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보다가 포기하고,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영화에 의존하기로 했다. 매주 토,일요일 밤이면 빼놓지 않고 보던 주말의 명화도 삼중당 문고만큼이나 그리운 것이다.




이제 불혹을 넘긴 나이에 새로이 세익스피어를 만나게 되었다.

세사르 비달의 [폭풍의 밤]으로.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사실에 기반을 둔, 특히나 부인에게 두 번째 침대만을 남겼다는 유언장의 내용은 강력한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뭐라고, 도대체 왜?

세사르 비달의 [폭풍의 밤]은 이런 호기심을 충분히 만족시켜 주면서도,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새로이 세익스피어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곳곳에 세익스피어 원문의 대사를 그대로 사용한 듯 보이면서도 그 시절만큼 지루하지 않은 것은 세월이 지난 탓일까. 아님 세사르 비달이라는 작가의 힘일까.

세익스피어라는 멀게만 느껴지던 대작가에게 한발 다가 선 느낌이다.

이제 새롭게 용기를 내어 그의 희곡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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