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 지는 마을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저녁놀하면 한창 혈기왕성하던 젊음은 지나간, 이제 늙었다는 표현이 시작되는 시기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저녁놀하면 7~8살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 시간쯤이면 꼭 찾으러 나오시던 젊은 시절 엄마의 모습과 함께.

조금 전까지 하던 놀이에 대한 아쉬움과, 항상 엄했던 엄마에게 오늘은 무엇으로 혼이 날까하는 두려움이 적당히 버무려져서 어린 나의 발걸음은 조금 무거웠던 것 같다.

그 때의 감정이 무의식 저편에 앙금처럼 남아 있던 것일까? 성인이 된 지금도 저녁놀 지는 시간이 되면 종종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젊은 시절 가족을 부양하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한밤중에 늙은 아버지 옆에서 또각, 또각 손톱을 깎는 어머니. 그리고 들으라는 듯

“한밤중에 손톱을 깎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7쪽)라고 소리치는 어머니에 대한 회상으로 유모토 가즈미의 소설 [저녁놀 지는 마을]은 시작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 소설 속의 어머니와 젊은 시절 내 어머니가 오버랩 되었다.

늘 무엇엔가 화가 난 듯 경직되었던 표정. 단호하게 잘라 말씀하시던 모습. 그러면서도 특별한 반찬은 아이들 앞으로 밀어 놓고 손을 대지 않으시던 모습. 어쩌다 통닭 한 마리라도 특별식으로 시켜 먹을 때는 늘 뼈에 묻은 살만 드시면서 진짜 고기 맛은 여기에 있다고 말씀하시던 모습.

아마도 젊은 시절 내 엄마도 여리고 두려운 마음을 감추기 위해 자식들에게 더 엄하고 퉁명스럽게 행동하셨던가 보다.




어린 주인공인 나는 명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이혼한 엄마와 살고 있다. 이혼한 엄마는 나를 아빠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생계에 대한 자신 없음, 그리고 유부남인 직장 상사와의 불륜 관계까지, 많은 문제 속에서 약간의 정서불안 증세를 보인다.

그런 와중에 엄마의 어린 시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고 더군다나 할머니가 모아놓은 돈을 훔쳐 사라지기를 반복했던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난다.

엄마는 짱구영감으로 불리는 외할아버지에게 갖은 구박을 하면서도 그에게 어찌할 수 없는 애정을 보인다.

그리고 짱구영감과 함께 살게 되면서 가끔씩 나타나던 엄마의 정서불안 증세가 사라지고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된다.




힘든 시대를 힘겹게 싸워가며 살아가는 상처투성이 가족.

가족이란 무엇일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옆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나아가서는 치유가 되는 힘이다. 가족은.




[“죽으면 안 돼요........”

말투는 결코 다정하지 않았다. ‘제 멋대로 왔다 제멋대로 가는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아요!’라는 식의 상당히 위협적인 압력이, 고작해야 어린애 주먹 정도의 작은 숨결 속에 담겨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아직, 아직 조금 더............... 만약 누가 묻는다면 무엇을 위한 시간인지는 대답할 수 없었으리라.

다음 순간,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짱구 영감이 눈을 뜨고 이렇게 말했다.

“알고 있다.”] (12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