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남자 3
이림 글.그림 / 가치창조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과연 누군가가 살아갈 날이 100일이 남았다면 그 사람은 무엇을 할까?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초연하게 하던 일을 계속할 사람도 있겠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절망하여 폐인이 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신을 위하여 그동안 하지 못한 일들을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죽는 남자’의 주인공 서영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남을 위하여 그 100일을 사용하기로 한다. ‘죽는 남자’는 그렇게 시작된다.

 작품을 읽다보면 운명이 서영에게 잔혹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편안하게 죽기 위해서 주변 정리를 해야 할 인생의 마지막 100일에 해야만 할 무거운 짐들을 계속해서 얹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영은 잔혹한 운명에 불평하거나 삶에 절망하지 않고 그 짐들을 적극적으로 짊어진다. 그리고 그 짐들은 서영의 적극성에 보답하듯 서영이 살아오면서 가지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고뇌를 해결하고 후회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해결해준다. 서영의 적극적인 태도와 강한 의지가 운명의 잔혹함을 축복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죽는 남자’를 읽으면서 가장 주목할 점은 ‘죽는 남자’에는 악인도 없고 조연도 없다는 것이다. 서영이 주위사람들을 위했듯, 주변 사람들 또한 그들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하여 생각하고 행동한다. 서영이 남은 100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했듯이, 주변 사람들 또한 그들 각자의 삶에 대하여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빠짐없이 모여서 ‘죽는 남자’ 라는 작품을 완성시킨다.

 ‘죽는 남자’라는 제목을 보면 100일 후에 죽을 남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죽는 남자’라는 작품에서 죽음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단지 죽음은 그리고 절망은 무감각하게 살아온 삶에 최선을 다하게 하고, 삶을 빛나게 하는 요소일 뿐이다. 모든 것을 잃고 인생에 절망한 노숙자도, 천애고아인 현필도, 그리고 이제 죽을 서영조차도 절망도 죽음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죽는 남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의 빛나는 오늘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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