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은 읽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아 인생을 이렇게 단순하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

무의식 저 밑바닥에 가라 앉아 도사리고 있는 외로움, 상처, 고통 등을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방법을 그녀의 글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지상의 가치, 지상의 도덕에서 살짝 비켜서 있는 주인공들. 그러나 그들은 당당하게 자신을 직시한다. 타협하지 않고 비겁해지지 않는 의연함을 보여준다.




책표지의 문구 [쇼코, 곤, 무츠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었나요?]

정말 내 마음을 정확히 표현했다.

 

가끔 잠 안 오는 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내 인생에서 스르르 사라져버린 친구들을 떠올리곤 한다. 언제 연락이 끊어져 버린 것일까?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순간순간 잊어지지 않는 고마웠던 기억들, 그들은 잊었겠지만 나 혼자 슬프고 안타까워 그렇잖아도 못 이루던 잠은 더 멀리 달아나 버린다.




에쿠니 가오리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사라져간 친구들 같은 느낌이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져 있던 친구를 나이 들어 다시 만난 느낌. 10년 뒤의 쇼코, 곤, 무츠키를 만나는 것은 그랬다. 그렇게 반가웠다.




총 아홉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10년 전 헤어진 친구를 만나는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반짝 반짝 빛나는]의 10년 뒤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아껴두는 심정으로 다른 작품들 먼저 읽기 시작 했다.




[러브 미 텐더] [선잠] [포물선] [재난의 전말] [녹신녹신] [밤과 아내와 세제] [시미즈 부부]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기묘한 장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개인적으로 [선잠]이 가장 맘에 든다.




[선잠처럼 혼돈스러웠던 여름. 자동차 운전면허를 딴 여름. 애정을 매장해준 여름.

해질녘 바람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해질녘이라는 애매한 시간이 나는 좋다.

주부가 장보러 가는 시간,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노는 시간, 장밋빛과 회색빛과 연푸른빛이 한데 섞인 듯한 공기.] (91쪽)




“왜 글을 쓰냐고 물으면,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라고 대답합니다” (275쪽)

작가 후기에 나와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말이다.

글을 쓰는 삶. 글을 쓰는 능력을 가진 그녀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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