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유산
이명인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평소 가문이나 족보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까닭으로 책을 선택하기 전 잠깐 고민 했었다. 혹시 지루하지는 않을까, 평소 약점인 한자가 너무 많이 사용된 것은 아닐까 하고.

이명인 작가의 다른 책을 본 경험도 없으므로 작가의 글 스타일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은 상태여서 망설임은 더 했었다.

잠시의 망설임이 무색하게도 글은 술술 잘 읽어진다. 작가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은 대단했다. 한번 손에 책을 쥐면 그대로 마지막까지 읽어야만 할 정도로.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빠른 전개가 특히 장점으로 느껴진다.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너무 상세하고 친절한 경우는 독자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 한다. 반대로 심하게 가지치기가 되어 있는 경우도 왠지 미완성 작품을 보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명인 작가의 [은밀한 유산]은 약간 불친절한 정도랄까?  이야기를 툭 던져놓고 다음을 상상하면서 책을 읽어 나가는 독자의 재미는 나 몰라라 하는 정도.

작가가 조금만 더 친절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1890년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연암 이씨 축숙공파]인 고라실 문중과 [안동 김씨 문수공파]인 너븐들 문중간의 대립과 반목을 다루고 있다.

서로 이웃해 있는 두 문중 장손들의 생활과 크고 작은 사건들을 그리고 있는데 작가는 사건을 그저 던져만 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이어질 더 깊은 이야기를 상상하는 독자를 조금 어리둥절하게 한다. 사건을 묘사하는 작가의 솜씨가 워낙 탁월해 손에 땀까지 쥐어가며 글을 따라가는데 이야기가 툭 끊어지고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는 상황이다.




2부에서는 현대로 시점이 바뀌어서 두 문중의 자손들이 등장한다. 업치락 뒤치락하던 두 문중간의 대립은 사라진 듯 했으나 한 사건을 계기로 다시 문제제기가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두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를 살짝 가미해 독자들의 머리에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게 하지만 역시 작가는 불친절하다.




3부. 놀라운 반전. 혀를 내 두르게 하는 작가의 냉소가 느껴진다. 1부에서  적지 않은 비중으로 등장했던 [몽득]에 대해 의아해했었는데 역시 그는 중요 인물이었다. 복선의 의미에 대해 무릎을 치게 한다.




[새별은 기가 막혔다. 본이야 누구나 있으니 그렇다 쳐도, 시조는 무엇이며 중시조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대대로 내려오는 뼈대 있는 양반이야 그런 걸 안다지만, 이 시대에 누가 이런 걸 꿰고 산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그나마 양반이란 것도 조선 중기, 후기를 넘어오면서 족보를 사고파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는데, 도대체 이따위 것을 숙제라고 내주는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설령 양반이 제대로 맥을 잘 이어 내려왔다 해도, 도대체 조선시대 백성의 몇 퍼센트나 그 가문의 내력을 꿰고 사는 양반이었을까 생각하면 더욱 우스웠다. 대다수의 백성이 중인이나 상민 혹은 천민이었다.

그러니 귀하다고 모셔온 족보의 절반 이상은 가짜일 것이다. 돈으로 샀거나 혹은 남의 족보에 슬쩍 얹혀졌을 것이다. 그나마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그리고 그보다 더한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국도 끓여먹을 수 없는 족보를 누가 얼마나 보존해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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