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단편집 제목은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 하나이다
정하는 기준이 작가의 입장이든, 출판사의 입장이든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것을 고른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일본 작가인 사와무라 린의 단편집 [가타부츠]에는 [가타부츠]라는 제목의 소설은 없다
일본어인 [가타부츠]는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 또는 착실하고 품행이 바른 사람을 뜻하는 명사로 우리말로 직역하면 [보통 사람]이다.
[가타부츠]에 수록된 여섯 편의 단편은 연작 소설도 아니고, 각각 독립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의 성격은 가타부츠라는 말이 똑 떨어지게 맞춤이다
<맥이 꾼 꿈>
악몽을 먹는다는 상상의 동물 맥.
미치오와 사오리는 이 상상의 동물 맥으로 인해 우연한 만남을 갖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둘은 각각 다른 배우자가 있다
가타부츠인 미치오와 사오리는 ‘좀 더 일찍 만나거나,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할 사람들이다
둘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둘 중 한사람이 [죽음]을 택하기로 결심 한다
서로에게 비밀로 자살을 진행하던 중 사오리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사오리의 임신으로 그들은 가타부츠로서 ‘이제껏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일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을 택한다. 그들은 죽음으로 도피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불편해도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주머니 속의 캥거루>
편지 대필 업체에서 일하는 다카모리
그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지나쳐 강박증에 가까운 성격의 소유자다
‘늘 주위 사람을 챙겨주면서도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고마워해 주길 바라지 않는’ 그러나 ‘마치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으면 자신은 아무런 가치도 없게 될 것 같아서 전전긍긍하는 사람’으로 주위 사람에게는 비쳐 진다
가타부츠인 다카모리에게는 아코라는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
그녀는 다카모리의 첫 번째는 자신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카모리의 애인들과 경쟁 한다
아코가 그런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다카모리가 그녀의 응석을 무엇보다도 (애인과의 약속보다도) 우위에 두기 때문이다
그는 아코에게서 한 발짝도 달아날 수 없다고 느낀다.
<역에서 기다리는 사람>
역에서 기다리는 사람에서는 다소 기형적인 가타부츠가 주인공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는 ‘역에서 기다리는 사람 관찰하기’가 취미이다. 카페 같은 편안한 장소가 아니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인파가 밀어닥치는 개찰구라는 장소에서 혼자, 조금 불안한 듯이 기다리는 사람’을 보는 것.
그는 ‘기다리는 사람은 믿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 한다 이유는 인간의 믿음이란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불안을 극복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살의도 품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고 후회도 없다.
<유사시>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과 7살 연상의 남편을 둔 전업 주부 ‘나’는 강박 신경증 환자이다.
그녀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만 병원을 찾는 대신 ‘루나’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내고 ‘루나’의 도움으로 강박 신경증을 이겨 낸다. 하지만 루나는 실존인물이 아니고 본인이 자문자답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일어난 자그마한 사건으로 그녀는 자신의 “유사시”에 대한 공포도 이겨내고 남편도 그 공포에 빠질 위험으로부터 구하는 지혜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요즈음 너무 위악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지게 가볍기만 한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어느 정도 질려 있었던 차에 만나게 된 소설이라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가타부츠]
여리고 섬세한, 그러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라고 다르게 해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