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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어제와 오늘 문학동네 때문에 머리가, 가슴이, 마음이 호강했습니다.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에 이어, 오늘은 Q&A를 읽었답니다.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가 롯데월드의 아틀란티스 같았다면, Q&A는 애버랜드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았습니다. 읽으면서 느낀 즐거움의 종류는 달랐지만, 즐거움의 질은 같았습니다. 특히 Q&A는 겉표지가 참 예쁘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종이재질이여서 더 좋았습니다.
십억 상금의 주인공, 람 모하마드 토머스! 그가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 체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처음엔 저도 반신반의 했습니다. 가난한 웨이터가 십억 상금의 퀴즈쇼에서 우승을 했다니요!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티비에 나오는 퀴즈쇼 우승자들을 보면 하나같이 좋은 학벌에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니, 저의 이런 짐작은 당연한 것이었겠지요. 저는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면서, 혹시 이런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가 방청객과 짜고, 혹은 프로그램 관계자와 짜고 사기친건 아닐까?, 하는 기대말입니다. 열여덟살의 웨이터가 나도 못해본 퀴즈쇼의 우승을 했다고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의 똑똑함을 혹은 나의 행복감을 과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보다 똑똑하지 못한, 나보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노숙자들을 보면서, 안쓰럽다 쳐다보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저들보다는 내가 낫다는 비겁한 자기 위안을 얻는 것 처럼 말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내가 어느 순간,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팬이 돼버렸습니다. 이미 그가 우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음 문제로 넘어갈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아마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이름만큼이나 따뜻한 그의 가슴에 반한 것이 겠지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없다면 어떨까요? 그만큼 불쌍한 사람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듭니다. 결혼할 동생에게 혼수를 마련해 줄 수 없어 애타하는 라즈완티보다 큰 집에 많은 보석에 둘러쌓였지만 자신의 아들조차 사랑할 수 없는 사히바가 더 안쓰러워 보였던 건 그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픔을 느낄 수 없다면, 진정한 행복도 느낄 수 없을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가슴은 하나인데,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기능이 없다면 어떻게 그 사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의 미소는 믿지 않습니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는 자신을 구해준 변호사에게 자신이 어떻게 문제를 맞히게 되었는지 말해줍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삶을 추적해봤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퀴즈쇼에서 우승하게 된 것이, 로또와 같은 기적이 아닌 당연한 삶의 결과, 필연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영화배우의 꿈을 키우는 살림, 그리고 그런 그를 믿고 후원하는 람 모하마드 토머스, 광견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게 위해 처음본 아이에게 돈을 구걸하던 차테르지, 어려운 환경속에서 노력해서 변호사가된 스미타까지,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시베리아에 핀 장미 같았습니다. 서로 사랑으로 얽힌 그들의 사이는 보는 저로 하여금 계속해서 미소를 짓게 했습니다. 특히 인도라는 나라의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를 거라는 24년동안의 편견을 이 책을 통해 버리게 되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책에서 보았던 성자나 거지가 아니라 나와 똑같이 슬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인도를 가기전에 이 책을 읽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와 같은 일에 울고 웃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건 인도가 아니야!'하고 울분을 토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언제고 인도를 가겠지만, 놀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책이 너무 재밌어 책장이 술술 넘어갔습니다. 박민규 작가님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느꼈던 아쉬움을 이 책에서도 느꼈습니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람 모하마드 토머스가 가장 현명한 답을 알려줄 겁니다! 내 곁에 있는 이에게 애정을 갖으라고 말입니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는 지금쯤 니타를 태운 페라리를 타고 호주를 여행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다 꼬질꼬질한 옷을 입은 어린 아이를 보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앞뒤가 하나인 행운의 동전을 선물하겠지요. 퀴즈쇼에서 우승한 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그래도 그가 행복하게 살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든든합니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